백운학의 천기누설 “천하를 뒤집으려는데, 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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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에는 기묘한 비사(秘史)가 있다. 백운학(白雲鶴)에 얽힌 이야기다. 원조 백운학은 조선말 대원군 때의 전설. 5·16 무렵의 백운학도 관상의 대가였다. JP의 회고다.

“혁명 전 일요일인가 석정선이 찾아왔기에, ‘너 혁명 같이하자’ 그랬더니 ‘난 못 하겠다’고 해. 그래서 ‘알았다. 못 해도 좋으니까 일절 말 내지 마라’ 그랬지. 석정선이 운송사업을 했는데 사고가 자꾸 나서, 나한테 유명한 관상쟁이한테 가보자고 하더군.”

 석정선은 JP의 육사 8기 동기생. 그는 김종필과 함께 정군(整軍)운동을 했다. 두 사람 모두 강제 예편당했다. 두 사람은 백운학을 찾아간다. 백운학은 종로5가 제일여관의 안채를 빌려 쓰고 있었다.

 “백운학이 누군지 난 몰랐지. 차례가 와서 석정선은 대청마루에 올라가 백운학 앞에 앉았고, 나는 관계없으니까 저쪽 복도에 앉아 있었지. 근데 백운학이 석정선은 안 보고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됩니다!’ 하고 소리를 쳐. 내가 ‘뭐가 되느냐’ 했더니 ‘허~’ 웃는 거라. ‘천하(天下)를 뒤집으려는데 됩니다.’ 그러는 거야.”

 천기누설(天機漏泄)이다. JP는 즉각 반응했다. “‘아니 여보, 사람 죽이지 말라’고 딱 잡아뗐어. 그래도 계속 ‘허허’ 하고 웃데.”

 백운학의 신통력은 이어진다.

 “그러곤 석정선한테 ‘당신, 그거 바퀴 달린 거 팔어. 이번엔 사람 죽여.’ 이러데. 내가 오싹했어. 석정선이 운수업 하는 걸 알았던 거지. … 혁명하고 내가 백운학을 데려다 저녁을 먹였는데…. ‘88세 넘기겠어요.’ 그러드만. 내가 ‘그러면 천수를 다하는 거지’ 하고 웃었던 기억이 나네. 근데 백운학이는 일찍 죽었어.”

전영기 편집국장

◆5·16=1961년 5월 16일 제2군 부(副)사령관 박정희(당시 44세) 소장이 주도했다. 제2공화국(내각책임제)의 장면 총리 정권은 붕괴된다. 4·19 혁명 1년1개월 뒤다. 출동부대의 주축은 6군단 포병단, 김포의 해병여단, 공수단, 30·33 예비사단 일부 등이었다. 3700명의 소수 병력을 동원해 성공시킨다. 참여 장교 250여 명 중 김종필(당시 35세)의 육사 8기생들이 핵심이었다. 김종필은 박정희의 조카사위다. 김종필은 공약과 포고문 초안을 작성한 거사의 기획자였다. 5·16 주체 세력은 장면 정권의 무능, 부패, 사회혼란상을 바로잡는 것을 거사 명분으로 내세웠다. 거사 성격을 놓고 혁명(revolution), 군사혁명, 쿠데타(coup), 군사정변(政變)이냐의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5·16 반대 세력은 민주주의 말살, 불법 쿠데타의 헌정 파괴라고 비판한다. 김영삼 정권 시절 5·16은 군사 쿠데타로 규정됐다. 반면 5·16세력은 근대화 혁명, 산업화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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