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북한 비핵화 진정성 만나서 확인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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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유럽 3개국을 순방 중인 이명박 대통령이 내년 3월 서울에서 열리는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초청하겠다고 공식 제안했다. 북한이 진정하고 확고하게 핵을 포기하겠다고 국제사회와 합의한다는 전제조건이 달려 있다. 남북 비핵화 협상→북·미 대화→6자회담 순으로 가닥이 잡힌 6자회담 재개 프로세스 이행을 앞두고 북한의 비핵화를 추동하려는 이 대통령의 정치적 의지가 담긴 것으로 일단 이해된다. 그러나 이 제안이 현실화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은 만큼 실현 가능성이 의문시되는 게 사실이다. 떡시루에 불도 지피기도 전에 떡 돌릴 생각부터 하는 격이다.

 북한이 이 대통령의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진정성을 갖고 비핵화 협상에 응한다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리비아 사태를 보면서 북한은 체제 안전의 유일한 버팀목은 핵무기라는 생각을 더욱 굳혔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더라도 대화를 통한 양보 획득에 목적이 있지 진지하게 협상에 임할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북한이 핵 포기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전에는 대화에 나설 수 없다는 이명박 정부의 원칙론적 입장은 이 점에서 충분히 이해가 간다.

 더구나 남북 간에는 천안함과 연평도 문제가 있다. 무력도발 행위에 대해 사과하기 전에는 북한의 대화 요구에 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 핵안보정상회의 초청과 관련해 이 대통령이 북한의 사과를 ‘진정성을 담보하는 최소한의 기준’이라고 못 박은 것은 이런 여론을 의식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천안함 폭침과 무관하며, 연평도 포격에 대해서는 이미 유감을 표시했다고 주장하는 북한이 사과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북한의 사과를 전제로 한 이 대통령의 핵안보정상회의 초청 제안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대북정책에서 원칙을 중시하는 이 대통령의 자세는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천안함과 연평도 문제에 발목이 잡혀 6자회담을 재개하지 못한다면 그건 문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없다고 손 놓고 있을 순 없는 일이다. 이 순간에도 북한의 무기고에는 핵이 계속 쌓여가고 있다. 북한 핵은 남북간의 문제이면서 국제사회의 문제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내에도 한계가 예상된다. 그런 만큼 천안함과 연평도 문제를 북한 핵 문제와 분리해 따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즉 ‘투 트랙 어프로치’다.

 남북한 수석대표 회담을 통해 6자회담 재개 프로세스에 시동을 걸면서 동시에 남북한 정부 또는 군 당국자 회담을 통해 연평도와 천안함 문제를 다루도록 하는 것이다. 남북 비핵화 협상에서 북한이 진정성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6자회담 프로세스를 중단하면 그만이다. 또 북한이 남북 당국 간 회담에 응하지 않거나 응하더라도 무력도발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대북정책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면 된다. 칼자루를 쥔 쪽은 우리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대화를 끌어가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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