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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은 종이책의 적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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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김영진
미래엔 대표

얼마 전 한 대형 서점에서 열 살 남짓해 보이는 어린이가 태블릿PC에 푹 빠져 있는 걸 봤다. 사방에 널린 종이책을 앞에 두고 전자책을 선택한 어린이를 보면서 최근 출판업계 화두인 전자책이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아직까지 출판업계에는 전자책이 종이책의 미래를 막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의 시선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디지털 출판과 아날로그 출판은 기본적인 성격이 다르다. 종이책은 책에 담긴 내용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책 자체를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밑줄을 긋거나 좋은 페이지를 접고 메모를 하는 등 그 모든 행위가 책을 읽는 과정이다. 반면 전자책은 단순히 텍스트가 스마트폰으로 옮겨간 것이 아니라 멀티미디어로 표현할 수 있는 콘텐트가 스마트 기기를 만났다고 할 수 있다. 즉 전자책은 종이책 시장을 잠식하는 것이 아닌 멀티미디어와 결합된 새로운 시장을 연 것이다.

 이는 전자책의 베스트셀러 순위에서도 잘 나타난다. 아동 학습만화를 필두로 추리소설이나 로맨스 소설 및 어학·자기계발 중심의 실용서가 매출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가볍게 잠깐씩 읽을 수 있는 책이나, 시각·청각·촉각 같은 오감을 통한 학습이 가능한 아동용 책의 특성에 잘 맞는다는 얘기다. 또 전자책 독자들의 피드백은 즉각적이다. 온라인 카페를 통한 정보공유, 개선점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 제시 등 종이책을 내놓았을 때는 경험하지 못한 생기 넘치는 반응들이 쏟아진다.

 스마트 시대로의 변화 속에서 전자책은 독자들과 만나는 새로운 콘텐트 창구다. 따라서 전자책을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력을 키우는 또 하나의 수단으로 보고 탄탄한 콘텐트 개발에 힘을 쏟아야 한다. 전자책의 활성화로 책 읽는 환경이 다양해지고 이를 통해 독서 자체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면 출판업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 맞춰 전자책은 전자책대로, 종이책은 종이책대로 각자의 장점과 특징을 살려 그 파이를 키워 나간다면 서로 긍정적으로 작용하며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종이책은 디지털이 채울 수 없는 공간을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메우고, 전자책은 편리하고 다양한 볼거리로 새로운 경험을 전함으로써 우리 출판의 미래를 더욱 다양하고 풍성하게 만들 것이다.

김영진 미래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