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여성 셋 시집 보낸 형사 …“진짜 친정엄마 같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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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서울 관악경찰서 조경숙(50·사진) 경위는 결혼식장에서 신부 측 어머니 자리에 앉는 데 익숙하다. 이미 3번이나 혼주 역할을 했다. 조 경위는 지난달 30일에도 강원도 춘천으로 달려가 탈북 여성 김은주(35)씨의 결혼식에 참석해 북한에 두고온 김씨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워줬다. 그는 “풍부한 경험 때문에 제 딸 결혼식 때는 정말 프로처럼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조 경위는 경찰 내에서 ‘탈북여성의 대모(代母)’로 불린다. 1997년 4월부터 탈북자 신변보호 업무를 시작해 줄곧 이 분야에서 일했다. 경찰 내에서도 최고의 베테랑으로 꼽혀 탈북자 관리업무를 처음 맡게되는 초임 형사들을 대상으로 강연도 자주 한다. 80년 11월 경찰에 투신해 일반수사 등의 업무를 맡았지만 탈북자들의 고민과 애로를 듣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이 일에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조 경위는 결혼을 준비하는 탈북 여성들을 위해 친정엄마처럼 혼수와 드레스 등을 꼼꼼히 챙긴다. 혹시나 탈북여성을 농락하는 일은 없을지 걱정돼 예비신랑에 대한 검증작업도 한다. 사업가인 한국 남성과 6개월의 교제 끝에 결혼에 골인한 김은주씨는 “처음엔 나를 감시하는 형사라고 생각해 무서운 느낌이었는데 고아처럼 자라온 저에게 진짜 엄마처럼 든든한 존재”라고 말했다.

 조 경위가 관악서에서 인연을 맺은 탈북자는 200여 명이다. 이 중 90%가 여성이라고 한다. 조 경위는 스스로를 “탈북자 딸과 동생·조카들이 가장 많은 부자 경찰관”이라고 소개했다. 2년 전부터는 관악구 관내 양지병원·남서울병원 등과 건강지킴이 업무 협약을 맺어 탈북자들이 의료비 감면 혜택과 매년 무료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탈북 아동 지원에도 관심을 쏟았다. 관악서 민간협력단체인 보안협력위원회에 도움을 요청해 모범 탈북청소년 2명에게 매월 5만원씩 장학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주선하기도 했다.

조 경위는 “보험사기·마약 등 범죄에 연루된 탈북자 기사를 접할 때면 한두 명의 잘못 때문에 2만 명이 넘는 한국정착 탈북자들의 이미지가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성공적으로 정착한 탈북자 한 사람이 통일 이후 남북 통합과 갈등 해결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게 바로 가장 적은 비용으로 통일을 준비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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