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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양 포스코 회장 10년 내다본 ‘미래 경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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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아프리카에 이어 남아메리카 지역에서 자원개발,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를 잇따라 따내고 있다. 평소 지론인 ‘미래 먹을거리를 사전에 준비하라’를 직접 실천하는 과정이다.

 정 회장은 7일 칠레에서 리튬 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페루 회사인 ‘Li3에너지’와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의 기술을 적용한 리튬 상용화를 위한 기술·투자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포스코는 RIST가 리튬 추출에 성공하는 대로 칠레에 공장을 착공하고 Li3에너지의 지분 인수도 추진한다. 이 회사는 칠레 아타카마주의 리튬 지분 60%를 보유하고 있는 천연자원 개발업체다. 이곳의 리튬 매장 추정량은 120만t에 달한다. 리튬은 모바일 기기와 전기차용 배터리의 핵심소재로 지난해 10만t 수준이었던 전 세계 리튬 소비량은 2050년에는 20배 이상인 연간 200만t으로 늘어날 것으로 포스코는 분석했다.

 정 회장은 4일에는 온두라스 포르피리오 로보 소사 대통령과 면담을 하고 온두라스의 인프라 및 도시건설 프로젝트 MOU를 맺었다. 연간 5%의 견조한 성장세를 보이는 온두라스는 최근 수력발전과 재생에너지·도로 같은 인프라 구축에 주력하면서 경제개발특구와 광물 개발에 포스코의 참여를 희망하고 있다. 정 회장은 5일에는 에콰도르를 방문해 포스코건설이 인수한 플랜트 설계 및 건설업체 ‘산토스 CMI’를 방문했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사진 왼쪽)과 포르피리오 로보 소사 온두라스 대통령이 지난 4일 온두라스의 도시 인프라 건설 및 자원개발 공동협력에 관한 협약을 맺은 뒤 악수하고 있다. [포스코 제공]



 이처럼 정 회장의 미래를 내다보는 경영 철학은 상무 시절인 10년 전부터 시작됐다. 2001년 포스코 유럽소장으로 근무할 때 독일차의 내구성과 강성이 한국차보다 뛰어난 이유를 분석했다. 당시 독일 업체들은 자동차 강판에 카본 등 특수소재를 넣어 고열로 압착하는 핫프레스포밍(기존 강판보다 강성이 두 배 우수) 공법을 사용해 초고강도 강판을 만들었다. 이를 유심히 지켜본 정 회장은 2004년 광양제철소장으로 부임하자마자 광양에 자동차강판연구실을 만들었다. 포스코가 이런 초고강도강 기술을 보유해야 세계 최대 규모의 냉연강판 생산업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더구나 현대차그룹의 현대제철이 고로사업에 뛰어들면서 공급이 줄 것을 예상하고 해외 공급처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도 적중했다. 이런 미래를 내다본 준비는 2009년 포스코 회장 부임과 함께 꽃을 피웠다. 쇳물로 냉연강판을 제조할 때 카본을 넣어 고압으로 프레스해 강성을 두 배 이상 높이면서 가벼운 초고강도강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초고강도강은 자동차 업체들이 연비를 좋게 하기 위해 강성은 높이고 무게를 줄이려는 신차 개발 목표와 딱 맞아떨어졌다. 개발 성공과 동시에 양산에 들어가 르노삼성 뉴SM5, 한국GM 크루즈에 사용됐다. 차량 충돌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B필라(앞뒤 도어 사이의 기둥)와 차체 기본구조에 쓰이면서 두 차량 모두 충돌시험에서 뛰어난 점수를 받았다. 이런 성과가 해외 자동차 업체에 소문이 나면서 올해 초부터 혼다·닛산·GM 등 해외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홍문희 자동차강판부장은 “7년 전 정 회장이 미래를 위해 투자한 게 최근 포스코의 수익성을 높이는 황금알이 됐다”며 “처음 서너 명으로 시작한 자동차강판연구소가 초고강도강 수요가 넘치면서 이제는 80명이 넘는 큰 부서가 될 만큼 빠르게 신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2000년 이후 매년 현대·기아차에 70만~120만t의 자동차강판을 공급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현대제철이 고로를 완공하면서 50만t 이하로 떨어진 데다 2016년부터는 20만t까지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3, 4년 후에는 매년 최대 100만t의 자동차강판이 남아돌 수 있다. 이런 우려를 초고강도강이 말끔하게 씻어 줬다. 포스코에서 매년 수십만t 규모의 자동차강판을 구매하는 일본 빅3(도요타·혼다·닛산)가 초고강도강을 자사의 신차에 맞게 개발해 주면 기존 자동차강판 구매를 대폭 늘리겠다는 긍정적인 신호가 접수된 것이다. 혼다의 경우 3년 후 나올 신차에 포스코가 이 강판을 공급해 주면 추가로 자동차강판 구매를 40만t까지 늘리기로 했다. 홍 실장은 “해외 자동차 업체에서 초고강도강에 관심이 많아 광양제철소를 찾은 귀빈들이 들러 가는 견학코스가 될 정도”라고 말했다.

  광양〓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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