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김진의 시시각각

현인택·천영우·김태효를 지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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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5·6 개각’ 사흘 전 북한문제를 연구하는 보수·우파 전문가 몇 사람이 이명박(MB) 대통령의 핵심 참모와 저녁을 같이했다. 나도 그중의 한 명이었다. 당시엔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류우익 주중대사로 교체될 것이란 얘기가 거의 굳어져 있었다. 전문가들은 현 장관을 바꿔서는 안 되는 이유를 이렇게 주장했다.

 “10여 년 만에 모처럼 대북정책이 원칙과 일관성을 찾았다. 여기에는 현 장관, 천영우 외교안보수석,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 3인의 공이 크다. 어설프게 대화재개와 대북지원을 주장하는 사람들로부터 그들이 대통령을 지켜내고 있다. 원칙 있는 대북정책은 MB의 몇 안 되는 업적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다. 북한은 거기에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다. 그런데 특별한 이유 없이 통일부 장관을 바꾸면 북한은 자신들의 요구대로 되는 거라 생각할 것이다. 또다시 통일부 장관 인사를 북한에 맡길 것인가. 잘못하면 MB의 대표적인 업적이 날아가 버릴 수 있다. 더군다나 지금은 민감한 시기다. 한반도에 격변의 쓰나미가 올지 모른다. 그런 판에 현·천·김이라는 원칙의 방벽을 무너뜨릴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현인택 장관은 결국 유임됐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대북 원칙론을 어렵게 지켜온 현 장관을 바꿀 경우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의견이 보수층으로부터 꾸준히 청와대에 전달됐다”고 설명한다. 이를 보면 그동안 적잖은 이가 청와대에 ‘현인택 고수론’을 전한 것 같다. 결국 대통령은 이런 얘기를 들었고 옳은 방향으로 결정을 바꾸었다.

 현인택·천영우·김태효 팀은 천안함·연평도 그리고 사이버 테러라는 북한의 도발 속에서 대북정책의 중심을 잡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들은 전략회의와 강연·기자회견·인터뷰를 통해 북한과 중국에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왔다. ‘북한은 책임 있는 행동 없이 천안함·연평도라는 전과(前過)로부터 도망갈 수 없다. 이런 원칙이야말로 불량학생 북한을 다시 책상에 앉히는 것이다. 남북, 북·미, 그리고 6자회담 같은 어떤 대화도 북한이 변하지 않고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북한에 시간과 달러만 주는 것이다. 대화가 유용하려면 북한이 변화와 진정성을 증명해야 한다.’ 얼마나 실존적이며 명쾌한 논리인가. 가출했던 논리가 10여 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이런 복귀에는 현·천·김의 노력이 있는 것이다.

 MB정권은 미국에 대해서도 원칙의 선을 지키고 있다. 지난달 클린턴 국무장관이 청와대를 찾았을 때 이 대통령은 북한의 역대 도발 사례를 열거했다. 그러고는 “그때마다 그냥 넘어가니 북한이 버릇을 고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클린턴 장관은 ‘북핵문제 해결의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을 조심스럽게 지적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한국의 입장을 이해했다고 전해진다.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고 서울에 왔을 때 현인택 장관이 만났다. 그는 우회적이지만 따끔하게 카터의 순진함을 지적했다고 한다. 카터는 북한의 열악한 식량·의료 사정을 얘기하면서 대북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 장관은 ‘당신이 본 게 북한 본질의 전부가 아니다’는 취지로 조용히 반박했다는 것이다.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칼라일은 ‘대(大)자연은 신의 옷’이라는 의상(衣裳)철학을 설파했다. 보이지 않는 신은 보이는 자연을 통해 의지를 내보인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옷은 인사(人事)다. 대통령은 인사를 통해 통치의지를 보여주고 구현하는 것이다.

 청와대 바깥의 고언(苦言)을 들었건, 아니면 대통령 혼자 숙고한 것이건 현인택을 살린 건 대통령이 옷을 제대로 입은 것이다. MB는 일단 대내적으로는 “대북정책에서도 대통령이 언제 또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씻어주었다. 북한과 중국, 그리고 미국에 대해선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다시 강조한 것이다. 정권은 현·천·김이라는 성벽을 지켜야 한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원칙의 성벽이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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