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신이 내린‘갑 중의 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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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4일 금융감독원을 찾아 부실한 감독을 질책 후 김석동 금융위장(왼쪽)과 권혁세 금감원장에게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오른쪽은 백용호 청와대 정책실장. [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이 4일 아침 예고 없이 찾아가 질타한 금융감독원은 그냥 ‘신의 직장’이 아니다. 관가에서조차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이라며 “국세청 위에 공정거래위원회, 공정위 위에 금감원이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그도 그럴 만하다. 관(官)의 권한과 민(民)의 자유, 장점만 있다. 높은 연봉에 고용 보장은 물론 권력도 누린다. 특히 세 가지가 남다르다.

 우선 높은 연봉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여러분 직원 1500명의 평균 연봉이 9000만원 가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이 홈페이지에 공시한 직원 평균 연봉(2009년 기준)은 8836만원이다. 기본급(4892만원)과 상여금, 각종 수당을 더한 것이다. 근무한 지 15년쯤 지나면 억대 연봉자가 된다는 뜻이다. 중앙부처의 한 국장급 공무원은 “금감원 부국장급인 친구와 연봉을 비교해 보니 절반밖에 안 되더라”고 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현재 6급 22호봉 공무원의 보수는 연 5000만원 정도다. 행안부 측은 “6급 22호봉이 되려면 9급으로 들어와 20년 이상 근무해야 한다”고 밝혔다. 금감원의 올 인건비(1417억원)는 예산(2632억원)의 절반이 넘는다.

금융감독원 간부들이 4일 이명박 대통령이 도착하기에 앞서 답변 준비를 하고 있다. [안성식 기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 구직자들에겐 ‘꿈의 직장’이다. 지난해 11월 30여 명을 새로 뽑는 금감원 공채 땐 1만5000여 명이 몰려 5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보였다. 연세대 함준호(경제학) 교수는 “금감원 연봉은 공기업 중 가장 높은 수준”이라며 “전문성을 인정해 높은 연봉을 주는 만큼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엄격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노후 보장이다. 국장급 직원이 은행이나 증권사 감사로 나가면 4억~5억원의 연봉을 받는다. 금융계 관계자는 “수석검사역이나 팀장급으로 일하다 금융사로 옮겨도 ‘억대 연봉은 기본’”이라고 말했다. 이직도 쉽다. A증권회사 관계자는 “금감원 출신이 늘 감사 영입 1순위”라며 “감독원과의 관계를 생각해 되레 낙하산을 요청하는 경우도 꽤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막강한 권한과 자유로운 책임이다. 금감원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9년 은행·증권·보험감독원과 신용관리기금 등 4대 감독기구를 통합했다. 그러면서 금융회사의 생사를 결정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됐다. 한국은행조차 금융회사를 검사하려면 금감원에 요청해 동의를 받아야 한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지난달 “중앙은행이 검사권을 갖지 못한 나라는 한국과 일본 등 전 세계 세 나라뿐”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런데도 견제는 받지 않는다. 이 정부도 책임이 있다. 정부는 2009년 초 ‘기관 특성’을 감안한다며 금융감독원을 공공기관 지정에서 해제했다. 이성헌 한나라당 의원은 “공공기관에서 벗어나면 예산·인사 등에 있어 정부의 감독에서 벗어나게 된다”며 “고삐를 죄어야 할 때 되레 고삐를 풀어 준 셈”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당시 “금융위의 감독을 받고 있어 이중 규제가 될 수 있고, 독립적인 감독을 하려면 필요하다”는 논리를 댔다. 금융위원회가 갖고 있던 조직 승인권도 올해부터 사라졌다. 금감원 마음대로 조직을 늘리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조직을 늘려 놓고 예산을 달라면 안 줄 방법이 없다”며 “금감원이 반관반민(半官半民)의 괴물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한나라당 의원들이 추진했던 ‘금융소비자보호원 신설안’도 “금융감독에 혼선만 일으킨다”고 반대해 무산시켰다.

  해결책으로 금감원의 힘을 어느 정도 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통합돼 있는 감독 기능을 기능별로 나누는 식이다. 이헌욱(참여연대 민생희망 본부장) 변호사는 “감독 당국과 업계의 유착이 이번 사태를 일으킨 만큼 별도의 금융소비자 보호기구를 만들어 서로 경쟁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나현철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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