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금피아 … 금융회사 45곳 감사에 금감원 출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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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금피아(금융감독원+마피아)’의 위력은 지난 3월 은행권 주총에서도 확인됐다. 주요 은행들은 금감원 출신이 맡고 있던 상근감사 자리를 다시 금감원 출신 인사들에게 넘겼다. 국민은행은 박동순 금감원 거시감독국장을, 씨티은행은 김종건 전 금감원 리스크검사지원국장을 감사로 선임했다. 이 과정에서 씨티은행은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 승인이 늦어지자 주총을 두 차례 열기도 했다. 신한은행은 더 황당했다. 지난 3월 말 주총에서 이석근 금감원 부원장보를 신임 감사로 선임했지만, 정작 그는 한 달이 지나도록 정식 취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저축은행 문제가 사회 이슈화되면서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심사를 보류했기 때문이다.

 4월 말 현재 전체 424개 금융회사 중 금감원 출신이 상근감사를 맡고 있는 금융회사는 은행 8곳을 포함해 총 45곳이다. 또 최근 10년간 금융사 이사 중 금감원 출신이 146명에 달한다.


 금감원 퇴직자들의 금융회사 취업은 요즘도 한창이다. 마침 지난주 대대적인 조직 개편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대신증권은 지난 2일 신임 감사위원으로 윤석남 전 금융감독원 회계서비스 2국장을 내정했다고 공시했다. 지난달 28일 금감원 국·실장 인사 전까지 현직에 있던 윤 국장은 나흘 만에 새 직장을 구했다. 기존 금감원 출신 감사의 임기 만료를 앞둔 증권사 중 상당수도 금감원 출신으로 다시 감사 자리를 채울 전망이다. 본격적인 ‘낙하산’ 시즌이 돌아온 것이다.

 금피아의 낙하산 인사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물론 이를 막기 위해 금감원 퇴직자의 금융회사 취업에 대한 제한 규정이 있다. 공직자윤리법상 금감원(2급 이상)과 금융위(4급 이상) 퇴직자는 퇴직 전 3년간 맡은 업무와 관련된 업체에는 2년 동안 취업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제도는 유명무실화된 지 오래다. 퇴직을 앞두고 업무 관련성이 적은 부서로 갈아타는 ‘보직세탁’으로 금감원 퇴직자들은 이런 제한을 손쉽게 피해왔다. 인력개발실이나 소비자보호센터·총무국 등이 대표적인 경력세탁용 보직이다. 실제 지난해 금융권 감사로 취업한 퇴직자 19명 중 11명이 퇴직 전 이들 부서를 거쳤다. 이날 이명박 대통령이 “금감원을 떠나기 몇 년 전에는 다음 갈 자리를 위한 보직에 대해 관리하는 관습이 금감원에 있다”고 지적한 것도 이 부분이다. 익명을 원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어디 감사 자리는 금감원 자리’라고 사실상 정해져 있다”며 “퇴직 뒤 자리를 염두에 두고 있는데 감독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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