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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개혁, 엄상섭은 뭐라고 말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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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권석천
사회부문 차장

51년 전 오늘(5월 4일). 신문엔 한 정치인의 부음이 실렸다. 2대, 4대 국회의원이었던 엄상섭(1907~60)이었다. 4·19 직후의 격변기에 제2공화국 헌법기초위원장을 맡아 토론하던 중 졸도해 끝내 숨진 것이다. 사인은 과로로 인한 뇌일혈.

 그의 일생은 번민의 연속이었다. 일제강점기 검사로 있었던 것은 그에게 ‘한없이 후회되는 일’이었다. 6·25 피란길에 세 아들을 한꺼번에 잃는 참극도 겪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었다. “주인을 잃은 이름/기정이 기민 기완…너희들 맡아볼 일/아비 대신 맡으련다.” 꿈에서 세 아들을 만난 뒤 지었다는 그의 시엔 슬픔과 의지가 꿈틀거린다. 그 슬픔의 힘으로 전시 국회(2대)에서 형법(1953년)과 형사소송법(54년) 제정을 이끌었다.

 엄상섭은 특히 자신이 몸담았던 검찰이 인권 보장과 범죄 수사의 정예 조직이 되길 바랐다. 서울지검 차장 시절인 1947년 11월 발표했던 ‘검찰제도에 대한 신구상’에는 그의 고민이 드러나 있다. “검찰 권한의 범위가 너무 넓으면 인권이 유린될 우려가 많아진다. 그 범위가 너무 좁으면 범죄자를 옹호하는 결과를 초래해 선량한 인민에게 해독을 끼치는 것을 막지 못한다.” 그는 “검찰관(검사)은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검사의 맹목적인 열성이 국가와 국민에게 해악이 될 가능성을 경계했다. (『효당 엄상섭 형사소송법논집』)

 오늘 엄상섭을 떠올린 것은 검찰 개혁이 다시 이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는 6월 임시국회에서 ‘대검 중수부 수사기능 폐지’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누구를 위한 폐지냐”며 반발하던 검찰은 저축은행 수사로 중수부의 존재 이유를 보여줄 태세다.

 그러나 국회와 검찰의 힘겨루기엔 뭔가가 빠져 있다. 사개특위 논의 과정을 보면 구호성 멘트만 난무할 뿐이다. 사법 시스템 전반을 관통하는 그랜드 디자인(Grand design)은 없다. 검찰권 남용을 막기 위해 중수부 수사 기능을 폐지하겠다면 권력층 비리 적발 기능을 보완할 장치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사개특위가 대안으로 제시한 특별수사청은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고 비용만 커질 수 있다.

 검찰 역시 거듭된 스캔들과 수사를 둘러싼 잡음에 대해 반성하고 책임지려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작은 권한이라도 빼앗길까 전전긍긍이다. “권력에 맞설 기백도, 그 기백을 뒷받침할 실력도 부족한 것 아니냐.” 검찰 내부에서 한숨 섞인 자조가 흘러나오지만, 윗자리에 앉은 검사들은 총장 교체기인 8월 달력만 쳐다보는 분위기다. 당장 한두 건의 수사로 성과를 올린다 해도 또다시 위기가 반복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건국기 대한민국엔 조국의 앞날을 부둥켜안고 씨름한 선배들이 있었다. 그들이 그때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기에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50년 뒤 우리의 모습은 후배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국회와 검찰은 양쪽 모두의 선배인 엄상섭의 문제의식을 되새겨봐야 한다.

권석천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