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곽재원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녹색성장 정책은 선택 아닌 조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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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곽재원
대기자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이 일본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2020년까지 세계 7대 녹색강국을 지향하는 녹색성장 정책은 최상위 국가계획으로서 원자력발전 확대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세계 원전 환경 악화는 우리에게 자칫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원자력이 국가 에너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지난 1월 통계가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총에너지 공급에서 원자력은 10.3%를 차지해 석유(36.8%), LNG(24.5%), 유연탄(24.1%)에 이어 4위였지만 전력으로 가면 원자력 비중이 25.7%로 유연탄(37.2%)에 이어 2위로 올라선다. 그 다음이 LNG, 석유, 무연탄이다. 수력과 신재생에너지는 전체 에너지에서 2.6%, 전력에서 1.6%를 차지한다. 전력은 최종 에너지로 산업과 가정에서 거의 절반씩 소비된다.

 녹색성장 정책은 이러한 에너지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한마디로 화석에너지를 대폭 줄이는 반면 원자력 비중을 보수적으로 늘리고, 신재생에너지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환경친화적 경제성장 동력을 마련하면서 지구온난화 등 지구적 과제에 대응하는 전략이 담겨 있다.

 지금 원자력 환경은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지난해 중반 이후부터 달아오른 세계적인 원자력 르네상스 열기가 확 식었다. 그러나 녹색성장 측면에서 보면 원자력 위축은 위기이지만,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기대 상승은 기회다.

 이 점에서 의미 있는 보고서가 나왔다. 지난해 세계 발전용량에서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가 원자력발전을 처음으로 역전한 것이다.

 미국 싱크탱크 월드워치연구소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원전은 안전규제가 엄격해지고 건설비용이 증가해 1980년대 후반부터 신장력이 떨어져 지난해 발전용량이 3억7500만㎾를 기록했다. 반면 신재생에너지는 지구온난화 대책으로 주목받으면서 급격히 증가해 풍력과 태양, 바이오매스, 소규모 수력의 합계가 3억8100만㎾로 원전을 상회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영향으로 폐로가 되는 원전이 많아지고 신설도 대폭적으로 늘기 어려워 신재생에너지와의 차이는 더 벌어질 전망이다.

 4월 1일 현재 세계에서 운전 중인 원전은 30개국에서 437기. 운전 개시부터 평균 26년 경과하고 이 중 145기는 2020년이 되면 운전 개시 40년을 맞게 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영향으로 40년을 넘어 운전하는 원전은 아주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세계 총발전량은 석탄·천연가스·석유 등 화력발전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원전은 13% 정도다.

 녹색성장에 가장 많은 힘을 쏟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이 같은 환경 변화 속에서 친(親)원전·탈(脫)원전·반(反)원전을 따지는 것은 단선적 사고다. 신재생에너지만 고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에너지 정책을 포함한 녹색성장 정책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조화의 문제다.

 이 때문에 정책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원자력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를 강력히 추진할 경우 어떤 에너지가 실질적으로 유효한가 ▶에너지 대량 소비에 길들여진 산업과 가정이 얼마나 에너지 절약에 동참하고 감내할 것인가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런 다음 원자력 비중과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를 논의해야 한다. 적어도 20~30년을 내다본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또 지구온난화와 관련한 국제협력과 외교에서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달라진 환경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2009년 12월 코펜하겐 유엔 기후변화협약 회의 이래 정부는 매우 의욕적이다. 올 10월 사막화방지협약 총회에 이어 기후변화협약 제18차 총회의 2012년 유치를 위해 뛰고 있다. 녹색성장 주도국으로서 격을 갖추겠다는 생각이다. 다만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세계 각국의 관심이 식어 가고 있는 상황이라 우리의 행보도 보다 전략적이어야 한다.

 우선은 원자력위원회·에너지위원회·녹색성장위원회 등 녹색성장 관련 위원회들의 조직·역할을 점검해 과학기술기본법과 녹색성장기본법 틀 안에서 정책의 종합성·정합성·투명성을 확보하는 일이 급선무다.

곽재원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