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아트'서 '레이저 아트'로

중앙일보

입력

"웰컴 투 더 월드 오브 백남준. "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인 백남준(68) 씨가 다음달 11일부터 4월26일까지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백남준의 세계(The Worlds of Nam June Paik) ' 라는 제목의 대규모 회고전을 연다.

TV를 소재로 테크놀로지의 혁명적 변화를 예술로 승화시켰던 그가 이번엔 레이저 아트라는 새 분야의 개척자를 자임하고 나섰다.

현란한 영상으로 전자(電子) 의 시대를 풍미하던 그가 이제는 광자(光子) 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정식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권위도 권위지만 건물 자체가 '예술' 인 곳.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이 달팽이 모양의 건물은 현대 미술의 본산인 뉴욕의 상징물로 꼽힌다.

이번 전시회는 구겐하임이 새 밀레니엄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야심작인 셈이다. 백남준 개인으로선 82년 휘트니 미술관 이후 18년만에 갖는 회고전이자 생애 최고의 '빅 이벤트' 로 꼽을 만한 사건이다.

'백남준의 세계' 는 구불구불 달팽이처럼 휘감아 올라가는 이 건물의 특성을 십분 활용했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우선 천장에서 로비까지 이어진 '로툰다' 로 불리는 나선형 통로의 가운데 빈 로턴다 공간으로 약 24m 높이의 폭포가 떨어지게 된다. 건물로 치면 7층 정도의 높이에 해당한다.

로비 바닥에는 떨어지는 물을 받을 작은 풀이 설치된다. 이 폭포는 레이저 광선이 마음껏 활보할 수 있는 캔버스가 된다. 레이저 광선은 물에 닿을 때마다 이리저리 모양을 그리며 힘차게 변형된다.

또 하나의 레이저 광선은 미술관 천정을 비추며 기하학적 무늬를 수놓는다. 이 레이저 기기는 미 해군이 개발한 것이다.

신작의 제목은 '포스트 비디오' . 비디오 그 이후라는 뜻이다. 기술의 진보와 발맞추려는 거장의 예술적 호흡이 느껴지는 이 제목은 그가 원래 전시 제목으로 염두에 두었던 것이기도 하다.

미술평론가 김홍희씨는 "한 곳에 머무르려 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도전적 정신이 담겨 있는 제목" 이라고 평했다.

김씨는 "간결한 기하학적 무늬로 상징되는 미니멀리즘이 레이저에 의해 해체된다는 점에서 포스트 미니멀리즘적 요소가 강하다" 고 덧붙였다.

나선형으로 된 통로와 여기에 맞붙은 전시장에는 TV를 이용한 옛 작품들로 채워진다. 'TV를 인간화했다' 는 세간의 평가를 재확인하는 자리다. 1층은 3백대의 TV로 이뤄진 'TV 가든' (74~78년) 이 자리잡는다.

'TV 부처' (74년) , 'TV 로댕' (75년) 등이 뒤를 잇는다. 고국 한국과 유학 생활을 했던 일본 등 과거를 회고하는 작품으로는 '몽골리언 텐트' (93년) , '나의 파우스트' (89~91년) 등이 선보인다.

백씨가 "지난 95년 베니스 비엔날레 때 구겐하임으로부터 회고전 제안을 받았다" 고 밝혔다. 5년 동안 구상을 가다듬어 정교하게 짜인 이 전시회는 이제 4주 후면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측근에 따르면 그는 좌반신 마비에도 불구하고 전시 준비에 '광적으로' 몰두해왔다고 한다.

한편 미술전문지 '아트뉴스' 1월호는 백씨가 80세 생일을 맞는 2012년 카네기홀을 빌려 전위예술가 존 케이지 1백 주기를 기리는 신작을 발표한다고 전해 그가 불굴의 예술혼을 가진 특별한 존재임을 다시 한번 확인케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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