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상품 거래세’ 법안, 정치·노동문제로 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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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선물·옵션과 같은 파생상품에 거래세를 매기는 증권거래세법 개정안이 격렬한 논쟁에 휩싸였다. 과세 형평성 차원에서 입안된 이 개정안은 지역사회와 노동계의 반발이 이어지며 정치·노동 문제로 번지고 있다. 한국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은 세계 17위권이지만 파생상품 거래량은 세계 1위다.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이 다른 금융상품과의 공평과세, 파생상품의 과도한 투기 억제를 목적으로 발의한 이 법안은 2012년부터 선물·옵션 등을 매매할 때 거래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업계의 부담을 고려해 최초 3년 동안은 과세하지 않고 2015년부터 기본세율(양도가액의 0.01%)의 10분의 1인 0.001%의 세율을 적용한 뒤 단계적으로 높여가기로 했다. 현재 주식을 거래할 때는 0.3%의 거래세(코스피는 거래세 0.15%에 농어촌특별세를 합칠 경우 0.3%)를 내야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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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법안은 3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으나 번번이 본회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3월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은 데 이어 지난달 열린 임시국회에서도 마지막 날(4월 29일)까지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이제는 6월에 열릴 임시국회에서 처리 여부를 바라보게 됐다.

 이 법안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은 부산 지역 사회와 증권업계의 강력한 반발 때문이다. 한국거래소(KRX) 본사가 있는 부산은 파생상품에 특화한 금융중심지로 발돋움하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 이러려면 파생상품이 요즘처럼 급성장해야 한다. 파생상품 시장(거래대금 기준)은 매년 20~30%씩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파생상품시장에서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전년보다 31.8% 증가한 57조원이었다. 올 들어서도 급증세를 이어가 3월엔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70조원을 넘어섰다. 부산 시민단체는 거래세 도입은 이런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역 사회 분위기를 의식한 부산지역 국회의원까지 일제히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법안이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금융도시시민연대 등 3개 단체는 최근 성명을 내고 “거래세 부과는 부산을 동북아 파생상품 특화 금융 중심지로 육성하려는 360만 시민의 열망을 짓밟고, 최근 신공항 문제로 절망에 빠져 있는 부산 시민을 두 번 울리는 처사”라며 “이 법안을 지지하는 모든 의원에 대한 낙선 운동도 불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민주노총(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까지 가세해 “증권 노동자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며 “필요하면 한나라당 정권 재창출 저지를 위한 총력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혜훈 의원 측은 “법이 시행되더라도 첫 3년간은 세금을 내지 않고 3년 후에 ‘시장 상황이 좋으면’이라는 단서를 달고 0.001%의 세율을 매기기 때문에 시장이 위축되고 국부가 유출될 것이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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