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이영구 '반상의 폭풍' 옥득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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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세돌 9단이 탈락했다. 조한승 8단도 중도 하차했다. 신예들의 도전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KT배 왕위전의 이변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10일 한국기원에서 벌어진 KT배 왕위전 8강전 결과는 놀라웠다. 초미의 관심이 모아졌던 이세돌 9단 대 이영구 4단의 대국은 이영구의 승리로 끝났다. 18세의 이영구는 지난해 신인왕전에서 준우승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유망주지만 정상권과 맞서기에는 아직 내공이 부족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였다. 그러나 이영구는 올해 들어 무적의 실력을 보이고 있는 이세돌 9단과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접전을 펼친 끝에 흑 불계승을 일궈냈다.

이세돌 9단은 근래 이창호 9단이 갖고 있는 왕위 타이틀에 두 번 도전장을 냈으나 모두 3 대 2의 스코어로 분루를 삼켜야 했다. 특히 지난해는 2 대 1로 앞서다가 역전패를 당해 아쉬움이 컸다. 이창호라는 존재와 두 번의 패배가 왕위를 향한 승부사 이세돌의 집념을 키웠다. 하지만 올해는 이영구라는 까마득한(?) 후배에게 그만 덜미를 잡히며 왕위의 꿈을 접어야 했다. 조만간 큰 일을 낼 것으로 보이는 이영구는 올해 20승 6패, 다승랭킹 6위를 달리고 있다.

조한승 8단 대 옥득진 2단의 대결도 또 한번 놀라움을 안겨줬다. 옥득진은 이미 '바둑 마스터즈'에서도 조한승을 꺾고 8강에 오른 바 있다. 그러나 옥득진은 올해 군복무를 끝내고 돌아와 갑자기 성적을 내기 시작한 일종의 '중고 신인'이어서 그가 또다시 막강한 조한승을 격파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프로기사는 별로 없었다. 오히려 바짝 고삐를 조인 조한승의 필승을 예상하는 프로가 훨씬 많았다.

그러나 결과는 옥 2단의 백 불계승. 교묘한 타개술을 선보이며 실리에서 앞서나가 승리를 굳혔다. 옥득진은 조한승에게 3전 3승. 옥득진이 일으키고 있는 무명의 대반란이 어디까지 갈지 궁금하다. 그는 준결승에서 이영구 4단과 맞선다.

8강전 나머지 두 판은 예상에서 빗나가지 않았다. 원성진 6단이 강동윤 3단에게 흑으로 2집반승을 거두고 윤준상 3단이 백홍석 3단에게 백 불계승을 거두며 준결승에 진출한 것이다.

원성진은 최철한.박영훈과 함께 '송아지 삼총사'로 불린 최고의 유망주였으나 근 2년간 끝없는 역전패에 시달려왔다. 하지만 올해 들어 부진을 한꺼번에 털어버린 듯 연전연승을 거두고 있다. 이날의 8강전에서도 차세대 기대주로 손꼽히는 소년강자 강동윤의 거센 추격을 뿌리치고 쾌조의 10연승을 이어갔다. 현재 23승 4패. 승률 1위에 다승 2위를 기록 중이다.

원성진과 준결승에서 맞설 윤준상 3단은 18세에 불과하지만 이미 지난해부터 정상권 턱밑까지 오르락거리고 있는 강자다. 조훈현 9단과 도전권을 놓고 겨루기도 했고 한국리그에서 당당 2장으로 선발되기도 했다. 윤준상은 최근 서서히 이름을 알리고 있는 백홍석 3단과 힘겨루기 끝에 승리, 4강의 한자리를 차지했다.

준결승전은 25일 한국기원에서 벌어진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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