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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토종 작물 경쟁력 키워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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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영문씨가 경남 사천시 서포면 비토리 별학도에서 종자를 채종하기 위해 배추밭을 살펴보고 있다. [송봉근 기자]

“우리나라 토종 작물의 미래 경쟁력을 키워주세요.”

 20년간 우리나라 작물의 토종 종자 보존과 온난화 대체작물을 연구해온 이영문(58·경남 하동군 옥종면)씨가 경남도에 토종 종자 154점을 기증하면서 한 말이다. 이씨는 논을 갈지 않고 볍씨를 직파하는 ‘무경운 직파농법(일명 태평농법)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이씨는 27일 밀양시 상남면 경남도 농업자원관리원 조용조 원장에게 토종 종자를 전달하고 조 원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기증한 토종 종자는 벼와 조·콩·기장 등 식량작물 112점, 호박·가지·수박 등 원예작물 25점, 참깨·들깨 등 특용작물 8점, 소귀·공작초 등 기타 작물 9점이다.

 이씨는 인사말에서 “평생 토종작물에 애착을 갖고 보존·육성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경남도에서 잘 보관하면서 경쟁력을 키워서 후손에게 물려달라”고 당부했다. 이씨는 하동에 살면서도 토종 종자의 교잡을 방지하기 위해 육지에서 200m 떨어진 사천시 서포면 비토리 별학도에서 수십 년간 토종 종자를 재배해 왔다.

 별학도에는 면적 8200여㎡의 개인 시험포장이 있다. 그는 “영농에 활용하기 위해 종자를 연구하다 제법 규모가 큰 시험포장까지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에 기증한 종자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외국종과 교배 등을 거치지 않은 순수 재래종을 계속 재배, 우수종자를 채집한 것이다. 기증한 종자 가운데는 국내에서 거의 사라진 아마·흑기장·소귀나무 같은 희귀 종자와 붉은쌀·녹색쌀 같은 기능성 성분을 가진 종자가 포함돼 있다.

 36년간 농사를 지어 온 이씨는 별학도에서 온난화 대체작물도 연구 중이다. 한국에서 자라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열대 식물인 올리브, 제주지방에만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난지성의 소귀나무, 일본 남쪽 지방에 자생하는 열매마 등을 재배하며 한국에서의 토착화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온난화로 시험재배 중인 아열대 식물 30여 종 가운데 20종은 국내 재배가 가능한 것으로 분석되는 등 토종 작물의 설자리가 계속 좁아지고 있어 토종 종자 보존과 개량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농업자원관리원은 기증받은 종자를 증식해 일부는 종자은행에 보존하고 일부는 희망농가에 분양할 계획이다. 농업자원관리원은 자체 종자은행에 1670점의 각종 종자를 보관하고 있다.

 조 원장은 “토종 유전자원은 향후 농업의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고 종자 주권을 지킬 수 있는 중요한 열쇠”라며 “앞으로도 사라져 가는 우수한 토종 자원을 체계적으로 수집·관리하고 농가에도 보급하겠다”고 말했다.

글=황선윤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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