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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BC가 한국서 카드사업 안 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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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매튜 디킨
한국HSBC 은행장

한국에서 많이 받는 질문은 ‘HSBC은행의 성장전략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미소를 짓게 된다. 짧은 질문이지만 한국인 특유의 긍정적 사고, 현실에 안주 않고 더 발전하려는 의지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즈니스 현실에서 최선의 전략적 결정은 언제 물러서고, 언제 더 보수적으로 경영해야 하며, 필요할 경우 어떻게 출구전략을 쓸 것인지에 관한 것인 경우가 종종 있다.

 비즈니스 전략에 대한 책은 많다. 그럼에도 전략을 전술 또는 실행계획과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전략은 회사 혹은 해당 비즈니스를 경쟁자와 비교해 어떻게 차별화하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상위의 개념이다. 성공적인 경영자라면 다음 질문들에는 언제나 명확히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 고객이 자기 회사의 상품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은 모든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우리 상품이 시장 최저가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해당 상품과 생산과정을 지속적으로 개선하지 않는 한 문제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만약 ‘편리함’이라면 고객이 편리함을 확실히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고객의 구매 결정 뒤에는 당신이 ‘얼마나 신뢰할 만한 판매자인가’란 요소가 있다. 구매결정 과정을 이해한다면 비즈니스 과정을 설계할 때 최우선적으로 고려할 사항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둘째, 당신은 비즈니스에서 어떤 요소를 포기할 수 있는가? 구매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모든 요소를 고려한다고 일인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요소를 ‘중간’ 정도 수준으로 유지하면 경쟁자보다 부진할 가능성이 크다. 코스트코는 편안하고 쾌적한 쇼핑 환경을 포기했다. 대신 ‘저렴한 가격’을 경영에 도입했다. 반면 까르띠에는 멋진 디자인과 희소성을 우선순위에 둔다. 가격 경쟁력은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는 두 사례 모두 성공적이다. 반면 중급의 보석을 고급 매장에서 판매한다면 결과는 아주 달라질 것이다. 그럭저럭 살아남을 수 있을진 모른다. 그렇지만 필자라면 코스트코나 까르띠에 같은 기업에 투자하겠다.

 셋째, 당신이 해당 시장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며 의도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시장은 어디인가? 만약 당신의 답변이 “큰 시장이기 때문에 당연히 진출해야 한다”거나 분명한 답변이 없다면 비즈니스는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HSBC은행이 한국에서 신용카드 사업을 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사람이 있다. 1억 장 이상의 신용카드가 쓰이는 한국은 엄청난 규모의 시장이다. 그러나 HSBC가 신용카드를 내놓는다고 고객들이 기존 카드를 놔두고 HSBC카드를 선택할지 의문이다. 기존 기업에 시장을 맡기는 편이 낫다고 본다. 물론 이를 성장전략이라고 칭하기에는 무리가 따르겠지만 HSBC엔 가장 지혜로운 전략이라고 믿는다.

 HSBC의 전략은 잘하고 있는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강점은 전 세계 87개국과의 연결성, 그리고 해당 시장에 대한 HSBC만의 전문성이다. 이런 강점을 토대로 한국 고객이 다른 시장에 현명하게 투자하고, 다른 나라와의 거래는 물론 다른 투자자의 재정 지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아울러 글로벌 기업이 한국에 진출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비즈니스의 성장은 그것이 올바른 성장일 때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이어야 할 시기뿐 아니라 언제 보수적으로 경영하거나 혹은 물러서야 할지도 알아야 한다. 경영자는 취사선택을 통해 기업의 강점에 집중함으로써 효과적이고 지속가능한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그것이 진정한 성장전략이 될 수 있다.

매튜 디킨 한국HSBC 은행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