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이디푸스가 어렵다니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코러스의 대장 역할을 한 조휘는 안정감 있는 성량으로 극의 중심을 잡았다. 무엇보다 오이디푸스를 연기한 박해수(오른쪽)의 존재감이 빛났다. [프리랜서 오종덕]


짜고 하는 일일까. 올해 연극계는 그리스 신화 ‘오이디푸스’ 풍년이다. 1월 재단법인으로 독립한 국립극단의 개막작이 한태숙 연출의 ‘오이디푸스’였다. 3월에도 박근형 연출 등 두 편의 ‘오이디푸스’가 공연됐다. 왜 이 골치 아픈 연극을 이 시기에 잇따라 올리는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그리고 4월, ‘연극계의 스타일리스트’ 서재형(41) 연출의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가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올라갔다. “마침표를 찍었다”란 말이 나올 만큼 이 연극, 대박이다.

 개막일인 26일 밤, 트위터와 예매사이트 게시판은 “작품 좋다”란 후기가 쏟아졌다. 삽시간에 퍼진 입소문 덕에 전체 8회분 티켓은 몽땅 팔리고 말았다. LG아트센터 기획 연극이 개막 첫날 전회 매진을 기록한 건 3년 만이다.

 왜 이토록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을까. “그리스 신화는 어렵다”라는 고정관념을 한방에 날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원작을 훼손시킨 것도 아니다. 할 얘기 다 했고, 엄숙하면서도 진지했다. 자칫 고루하고 낡아 보이는 걸 손에 확 잡힐 듯 확 낚아채는 게 진짜 ‘현대적 재해석’이다.

 객석이 사라졌다. 대신 무대에 간이 좌석 300석을 만들었다. 관객은 선착순으로 자리에 앉게 된다. 헐떡거리는 숨소리마저 들린다. 마지막에 주인공 오이디푸스는 황량한 미지의 세계로 떠나가는데, 그때서야 닫혀있던 객석이 보인다. 영리한 공간 이용이다.

 출연진은 모두 15명이다. 모두 흰옷을 입었다. 주인공 오이디푸스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배역을 소화할 뿐, 나머지 배우는 역할을 휙휙 옮겨갔다. 특정 배역을 소화하다 갑작스레 “캬악캬악-” 소리를 내며 새가 되는 식이었다. 그 이음새가 그럴 듯 했다. 아기를 안고 달래는 양치기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 스산한 바람 소리와 문 삐거덕거리는 소리도 배우들의 몫이었다.

 음악과의 조화도 뛰어났다. 주요 대사는 정극처럼 심각하게 쏟아 부었지만 극과 극 사이를 메워주는 건 단조의 선율이었다. 최우정 작곡가의 음울한 선율은 통일성을 이루며 극의 비장미를 한껏 올렸다.

 서재형 연출가가 이끄는 극단은 ‘죽도록 달린다’다. 이름처럼 엄청 달린다. 열심히 뛰다 턱 밑까지 숨이 차 오르는, 그 극한의 단계에서 연기를 하는 게 개성이 됐다. 이번 연극에선 달리지 않는다. “관객이 너무 낯설어했다. 내가 좋은 것만 할 순 없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극의 속도감까지 떨어지진 않았다. 뛰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놓자 작품은 노래·움직임·조명 등을 다양하게 활용하며 클라이맥스를 향해 더욱 빠르게 치고 올라갔다. 지나친 형식미에 사로 잡히지 않은 덕일까. 이제 서재형은 개성 있는 연출가의 껍질을 벗고, 대가의 반열에 오르고 있었다. 5월 1일까지, 02-2005-0114.

글=최민우 기자
사진=프리랜서 오종덕

◆오이디푸스(Oedipus)=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범한다”라는 신의 게시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지만 결국 그 저주대로 되고 마는 그리스 신화의 인물이다. 시인 소포클래스는 이 전설을 비극 3부곡 ‘오이디푸스왕’으로 엮어냈다. 프로이트는 유아기에 아버지에게 반항하여 그를 배척하고 대신 어머니를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 욕망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정의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