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발 안 먹히네 … ” 가이트너의 굴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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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티머시 가이트너(Timothy Geithner·사진) 미국 재무장관이 ‘강한 달러 정책’을 재확인했다. 그는 26일(현지시간) 뉴욕의 미국외교협회(CFR)에서 연설을 통해 “오바마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달러화 가치를 일부러 떨어뜨리는 일은 하지 않는다”며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강한 달러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이트너는 이어 “우리는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는 방법으로 무역에서 이익을 취하는 전략도 택하지 않을 것”이라며 “내가 재무장관으로 있는 한 강한 달러가 미국 이익에 부합하는 정책이라는 입장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가이트너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이날 달러화는 주요 선진국 통화에 대해 일제히 약세를 기록했다. 특히 유로-달러 환율은 6일 연속 올라 유로당 1.46달러대에서 거래됐다. 이로써 달러값은 16개월 만에 최저치로 주저앉았다. 달러가 맥을 못 춘 건 27일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초저금리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이날 Fed 벤 버냉키(Ben Bernanke) 의장도 97년 만에 처음 여는 기자회견에서 저금리 정책을 지지하는 발언을 할 것으로 보인다.

 가이트너의 ‘말발’이 먹히지 않은 건 미국의 눈덩이 재정적자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앞으로 12년 동안 재정적자를 4조 달러 줄이겠다는 중장기 재정계획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공화당 소속인 폴 라이언 하원 예산위원장은 10년 동안 6조 달러를 삭감하는 안을 내놓고 정부와 대립하고 있다. 더욱이 오바마는 적자 축소를 위해 지출 삭감과 함께 증세를 제시했으나 공화당은 증세에 반대하고 있어 협상이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가이트너는 이를 의식해 “2015년까지는 재정적자가 안정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로 반전될 것”이라고 강조했으나 시장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가이트너는 이어 의회에 국가부채한도 증액도 촉구했다. 그는 “지금처럼 민감한 시기에 의회가 시간을 너무 끌면 국민이 불안해할 수 있다”며 “의회가 필요한 조치를 취해줄 것이라고 믿지만 6월까지 이 문제를 끌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현재 14조3000억 달러인 미국 정부의 국가채무한도는 다음 달 16일이면 다 찰 것으로 예상된다. 비상조치를 다 동원해도 7월 8일 전에 의회가 한도를 증액하지 않으면 미 정부는 기술적으로 파산 상태가 된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보다 더 큰 파장을 국제 금융시장에 몰고올 수 있다고 가이트너는 강조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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