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 커진 시장, 말이 안 먹혀 … 답답한 중국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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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앤디 셰

중국 경제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훌륭하게 견뎌냈다. 미국과 유럽이 반시장적이라고 비난했지만 중국 경제정책 담당자들이 자본을 통제한 게 주효했다. 외환시장을 틀어쥐고 사실상 달러 페그제(고정환율제)를 실시한 덕분에 수출이 늘어난 것도 경제 회복에 한몫했다. 여기에다 엄청난 정부 돈을 쏟아부어 내수를 부양했다. 상승세를 탄 경제는 2010년 1분기 11.9%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정점에 달했다. 모든 게 좋아 보였다.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9~10%의 ‘정상’ 수준으로 회복됐으니 말이다.

 그런데 물가가 문제였다. 성장률 둔화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물가지수(CPI) 곡선은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었다. ‘성장률이 떨어지면 물가도 하락하겠지…’라고 방심했던 당국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인민은행이 지난해 10월 이후 부랴부랴 금리와 은행 지준율 인상이라는 카드를 뽑아들었다. 금리는 네 번, 지준율은 일곱 번 올렸다. 그럼에도 물가는 잡히지 않는다. 이셴룽(易憲容) 중국사회과학원 교수는 “당국은 인플레 압력을 과소 평가했다”며 “안일한 대응이 사태를 더 키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을 ‘정책과 시장의 충돌’에서 찾는다. 정부 정책이 잘 먹히지 않을 정도로 시장 규모와 영향력이 커졌다는 얘기다. 식료품 가격 통제가 대표적인 예다. 당국은 물가를 잡기 위해 지난해 말 농축산물과 일부 소비재 가격 통제에 나섰다. 다국적 소비재 업체인 유니레버조차 중국 정부의 가격 지도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압박이 느슨해지면서 잡힐 듯했던 물가는 다시 튀어 올랐다. 부동산 가격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가 은행 대출을 줄이는 등 집값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파트 가격은 내릴 줄 모른다. 5000만 명으로 추산되는 도시 고급 소비층은 가격에 상관없이 럭셔리 제품 쇼핑에 나서고 있다. 스타급 이코노미스트인 앤디 셰 전 모건스탠리 수석연구원은 “중국의 소비시장은 미국에 이은 세계 2위 규모”라며 “시장은 이익을 좇을 뿐 더 이상 정부가 가라는 곳으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무리 강한 정부라도 궁극적으로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얘기다.

한우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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