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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 국회 청문회 선 전·현직 금융권력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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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저축은행 부실화 원인 규명 및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가 20일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렸다. 앞줄 왼쪽부터 증인으로 출석한 김석동 금융위원장, 진동수·전광우 전 금융위원장,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진념·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김형수 기자]


20일 저축은행 청문회는 이헌재(67) 전 경제부총리가 등장하면서 긴장감이 높아졌다. 이 전 부총리는 김대중 정권의 ‘외환위기 해결사’다. 초대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 재정경제부 장관, 부총리를 역임하며 금융·산업 구조조정을 주도했다. 퇴임 이후 공식 석상에 나타난 적도 거의 없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청문회에 불려 나온 건 한나라당이 “저축은행 부실의 뿌리는 그의 재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강력히 주장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10여 년 전 일로 나오라는 건 정략적 발상”이라고 반대했다. 우여곡절 끝에 여야가 ‘20일 하루 출석’으로 합의했지만 실제로 나올지는 이날 오전까지 불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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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날까지 국회는 그에게 출석요구서를 보내지 못했다. 청문회 일정이 확정된 지난주 이후 가족들과 함께 집을 비웠다. 한나라당은 ‘고의 잠적’이라며 몰아쳤다. 급기야 19일 밤 민주당 박지원(69) 원내대표가 “청문회에 안 오면 마치 당신이 모든 책임이 있는 것처럼 뒤집어쓰게 된다. 그렇게 되면 국민의 정부에도 오점을 남긴다”며 직접 설득했다. 그러자 이 전 부총리도 비로소 마음을 굳혔다는 후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정무위원들에게 “나는 전직 경제총수로 나가는 거다. 현직인 윤증현(65) 기획재정부 장관이 나와야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 전 부총리는 국회 기획재정위에 참석한 윤 장관이 정무위로 옮겨온 오후 4시30분 무렵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청문회에서 그는 특유의 카리스마를 보였다. 예의 느린 말투로 의원들의 추궁을 여유 있게 맞받아쳤다. 한나라당 김영선 의원이 지각 출석을 추궁하자 “적어도 전·현직 금융경제 책임자를 불러 증언을 들을 때는 모양을 갖춰달라는 말씀을 드린 것”이라며 “저도 할 말은 많지만 그 정도로 끝내달라”며 불편한 심경을 내비쳤다. 상호신용금고를 저축은행으로 명칭을 바꾼 것에 대해 “우리는 10여 가지 명칭을 예시해 제시했을 뿐이다. 당시 한나라당이 다수당이던 시절 국회에서 의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명칭 변경이 잘된 것이냐고 지적하자 “잘못됐다면 지금 계신 분들이 다시 논의해달라”고 응수했다.

 이날 여야 의원들이 타깃으로 삼은 증인들은 뚜렷이 구별됐다. 여당 의원들은 야당 집권 시절의 경제총수였던 이헌재·진념 전 경제부총리에 집중했다. 반면 야당 의원들은 전광우(62)·진동수(62) 전 금융위원장과 김종창(63) 전 금융감독원장을 주로 공략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낸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여야 양쪽의 공세 대상이었다. 민주당의 우제창(48) 의원이 “저는 윤 장관이 2006년 도입한 ‘88클럽(고정 이하 여신비율 8% 미만, BIS 자기자본 비율 8% 이상)’ 우대조치가 저축은행 사태의 핵심적인 시발점이라 생각한다. 책임을 느끼는가”고 묻자 윤 장관은 “공직자가 자기 한 일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피해나갔다. 각론에서도 의원들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한나라당 고승덕 의원이 “오늘은 현 정부 재정부 장관이 아닌 참여정부 금감원장 자격으로 오신 것”이라며 “윤 장관이 이명박 정부가 떠안은 PF 부실 12조2000억원의 99%를 만든 셈”이라고 몰아치자 그는 “당시 시행령 주무부처가 재정부였다. 논의에는 청와대도 참가했다. 내 개인에게만 포커스를 맞추지 말라”고 화살을 돌렸다.

 현 금융 수장인 김석동(58) 금융위원장은 조심스러웠다. 평소의 거침없는 말투는 없었다. 전직 선배들이 관련돼 있는 만큼 말 한마디에도 신중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저축은행 부실의 가장 큰 요인은 대주주와 경영진의 모럴해저드”라고 주장했다. 정책 책임론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는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이라며 “당시 각종 규제 완화 정책은 경제가 좋아지는 효과를 냈지만 반대로 저축은행의 과도한 외형 확장을 부추기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있다”고 말했다.

여야는 네 탓 공방을 벌였다. 민주당 조영택 의원은 “(여권이) 전 정권에 책임을 돌리는 것은 경복궁이 무너졌을 때 대원군을 탓하는 격”이라고 말했다. 고승덕 의원은 “현 정부는 폭탄을 떠안은 책임밖에 없다”고 맞섰다.

글=윤창희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청문회 말말말

당시로 돌아가더라도 그런 정책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진념 전 재정경제부 장관)

그 당시엔 최적의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상황이라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

저축은행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조치들이 무리한 외형 확대의 계기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이 아니라 금융사기방조원이다. (미래희망연대 김정 의원)

보초 서는 사람이 졸든가, 아니면 공격이 있는데도 헛방을 쏘니까 이런 문제가 나온다. (민주당 홍재형 의원)

금감원이 저축은행을 매매 알선하는 브로커 역할을 한 게 아닌가. (한나라당 이진복 의원)

부실 저축은행 대주주들은 목욕할 생각도, 세수할 생각도 없이 좋은 옷 입고 뽐내다가 온몸에 종기가 난 셈이다. (한나라당 권택기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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