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영아의 여론女論

학생, 기생, 창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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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영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

20세기 초 조선시대의 관기(官妓)가 해산되고 기생들이 기생조합으로 재조직되는 과정에서 성(性)을 파는 ‘창기(娼妓)’와 기예를 파는 ‘기생(妓生)’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나 기생들은 이러한 세태를 못마땅해했다. 그래서 기생들만이 쓰던 붉은색 우산을 창기들도 사용할 수 있게 되자, 기생들은 자신들의 우산에는 ‘기(妓)’자를 새겨 창기와 자신들을 구별했다(『만세보』, 1906.7.19). 또한 1916년 창기조합이었던 신창조합이 기생조합으로 인정을 받았을 때에도 다동 기생조합과 광교 기생조합 등의 기생들은 그들을 자신들과 같은 부류로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 당시 여학생들과 기생의 외양이 비슷해지자 이번에는 여학생들이 자신들과 기생을 구별하려 했다. 여학생들은 제복을 입고 교표를 달게 하고, 기생들은 여학생 차림을 하지 못하도록 단속하자는 의견도 나왔다(‘기생의 학생장(學生裝)은 엄중히 금지’, 『동아일보』, 1923.1.29). 즉 여학생들은 자신들과 기생을, 기생들은 자신들과 창기들을 구별함으로써 여성 내에 ‘위계’를 만들고 다른 계층의 여성들에게 배타적인 태도를 취했다. ‘여자의 적은 곧 여자’였다. 연대가 없는 여성들에게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그래서 창기도 기생도, 그리고 여학생도 모두 외롭고 힘들었다.

 2004년 성매매 특별법이 발효되었을 때, 성매매 여성들은 이 법률을 발의·시행하는 데 앞장선 여성 권력들을 공격했다. 성매매 여성들은 이 법률이 자신들을 위한 것이라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들을 범죄자 취급해 사회로부터 소외, 배제시키고 생존권을 박탈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에도 서울 모 지역의 성매매 업소들이 폐쇄되자 성매매여성단체에서 가두시위를 하고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집단행동에 나섰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정부의 배제 논리를 비판하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도 한 명의 대한민국 국민이자 여성으로서 보호해 줄 것을 호소한다.

 성매매는 여성인권 운동가들도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 문제다. 성매매 여성들 사이에도 각기 다양한 상황, 맥락, 정체성이 있기 때문이다. 손쉽게 돈을 벌기 위해 성을 판다는 선입견으로 그들을 무조건 비난하는 것은, 여성 사이의 차별과 배제의 논리가 작동하던 20세기 초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제는 좀 더 넓게 연대해야 한다. 특히 여성들이 성적 수치심을 무릅쓰고 성 판매를 할 수밖에 없는 사회 현실과 구조를 바꾸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들 사이의 벽을 허물고,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영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