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커버스토리] 일부 벤처 '물 흐린다'

중앙일보

입력

몇몇 기업이 경제회생의 중추로 떠오른 벤처기업계의 물을 흐리고 있다. 지난주 코스닥 시장의 활황세가 다소 꺾였지만, 정보통신 업종을 중심으로 벤처기업의 주식이 지난해 10월께부터 급등하자 일부 기업 대표나 주주들이 모험정신을 저버리고 낡은 관행에 빠져들고 있다.

테헤란 밸리의 본산인 서울 강남역 유흥가에는 국내 벤처업계의 대표주자인 메디슨의 이름을 딴 '메디슨 카페' 가 간판을 내걸었다. 일부 기업주는 지분을 상당 부분 처분해 돈을 챙겼으며, '부동산을 매입하는 등 '연구개발보다 재테크에 열중하는 곳도 있다. 사무실 인테리어를 고급스럽게 바꾸고 외제차로 차를 바꾸거나 사장실에 여비서를 새로 두는 기업도 생겨났다.

중소기업 전문 컨설팅 업체인 21세기리스크컨설팅 이정근 사장은 "방만한 경영을 하거나 모험가 기업정신을 잃어버린 창업주가 없지 않다" 면서 "그러나 절대 다수의 벤처기업들이 오늘도 밤 늦게까지 일하고 있다" 고 말했다.

◇ 주식 팔아 돈 챙기기도〓'서울 논현동의 '인터넷 관련회사 D사의 창업주 C사장(36)은 지난해 7월 회사를 코스닥에 등록한 직후 자신의 지분을 대부분 팔았다. 주식 7만5천주를 공모가 1만5천원에 매각해 11억원을 현금화했으며, 지분은 16.43%에서 0.57%로 낮아졌다.

투자자들이 "코스닥에 올려 돈만 빼먹은 것이 아니냐" 고 거세게 항의하자 C사장은 최근 승용차를 독일제 BMW에서 세피아로 바꿨다. 이 회사는 최근 2년 동안 적자를 내는 등 재무구조가 여전히 취약하다.

인터넷 쇼핑 관련 I사도 비슷하다. 이 회사 L사장은 지난해 말 증자하면서 자신의 주식 1백만주를 주당 1만3천원에 팔아 1백30억원을 현금화했다.

◇ 강남 유흥가에서 대접받는 큰손〓30대 후반의 A사장은 지난해 성탄절 전날 밤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신 뒤 술값으로 8백만원을 지불했다. 그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강남 유흥가에서 VIP(귀빈)로 대접받고 있다. 한 룸살롱 주인은 "어떤 사람은 사장 명함과 거액이 예금된 통장을 보여주며 술을 마신다" 고 꼬집었다.

◇ 등록 미끼로 돈 챙기기도〓코스닥 시장 등록을 내세워 자금부터 끌어들이는 기업도 있다. 한 업체는 최근 코스닥 등록신청도 하지 않은 채 인터넷을 통해 주식을 공모했다. 이와 관련, 증권당국은 투자자의 주의를 당부하는 자료를 내기도 했다.

한 벤처기업 관계자는 "창투업체가 투자할 경우 벤처기업 인증을 받을 수 있다는 제도적인 허점을 이용해 일부 벤처기업과 창투업체가 함께 장외시장부터 주가를 띄우는 사례도 있다" 고 지적했다.

◇ 건실한 벤처기업이 훨씬 더 많다〓종합정보기술업체인 비트컴퓨터는 지난해 6월 서울 서초동 12층 짜리 건물을 사들였다. 역삼동 3개 빌딩에 나눠 세들어 있어 업무효율이 떨어져 고민한 끝에 세곳의 임대보증금과 회사의 투자지분 일부를 팔아 사옥을 마련한 것. '벤처 1세대로 꼽히는 조현정(42)사장은 "영업이익은 빌딩 매입에 한푼도 안썼다" 며 "부동산 투자로 오해받을까봐 본사이전 안내장에 부동산 매입자금 내역서까지 써넣었다" 고 말했다.

인터넷 서비스 네트워크 전문업체인 인성정보의 주가는 액면가 5백원짜리가 최근 4만원대로 올랐는데도 92년부터 써온 사무집기를 그대로 쓰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보다 33% 증가한 5백60억원인데 이익과 증자대금은 대부분 올해 투자비로 쓸 계획이다.

조영미 기획팀 과장은 "일부 벤처기업들이 흥청망청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며 "우리 직원들도 주식을 팔면 꽤 많은 목돈을 만지겠지만 돈보다 기술개발 성취욕이 더 크다" 고 말했다.
'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