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억 철근값 어쩌나, 잠 설치는 대리점 이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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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철근 판매대리점을 운영하는 이모(42) 사장은 요즘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지난달 법정관리를 신청한 LIG건설에 7억8000만원어치의 철근을 납품했지만 대금을 받을 수 없게 돼서다.

법원이 이 회사의 법정관리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모든 채권·채무가 동결됐다. 하청업체들은 현재 철근업체만 80억원, 전체로는 2000억원에 달하는 대금을 못 받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이 사장은 “회사 측이 법정관리 신청 직전까지 아무 일 없다는 듯 납품을 받았다”며 “지난해 말 법정관리를 신청한 한솔건설이 미리 미분양아파트라도 대금으로 줬던 것보다 훨씬 악성”이라고 말했다.

 기업어음(CP) 투자자는 영문도 모르고 뒤통수를 맞았다. 지난 12일 법정관리를 신청한 삼부토건은 보름여 전인 지난달 25일 60억원 규모의 CP를 발행했다. 총 CP 발행액 727억원이 모두 지난달 발행된 것이다. 지난달 21일 법정관리를 신청한 LIG건설은 부도 열흘 전 42억원의 CP를 발행하는 등 올 들어서만 700억원어치의 CP를 발행했다. 회사의 이름값을 믿고 연 7~8%대의 고금리 투자에 나섰던 투자자들은 뒤늦은 한숨을 쉬고 있다.

 주식시장 투자자들도 피해를 보고 있다. 지난주 잇따라 법정관리를 신청한 삼부토건과 동양건설산업 주식은 잇따라 하한가를 기록한 뒤 매매가 정지됐다. “소액주주만 황당할 뿐 어차피 지분을 팔지 않을 대주주는 당장 답답할 게 없다”는 게 증시 관계자들의 말이다.

 금융권도 ‘리스크를 분담해야 한다’는 건설사들의 주장이 적반하장이라고 반박한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의 장래성을 보고 대출했더라도 만기가 돌아오면 사업 가치를 재평가해 자금 회수 여부를 결정하는 건 당연하지 않으냐는 설명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사업이 예상보다 잘됐다고 건설사들이 은행에 이자 말고 더 주는 게 있느냐”며 “건설업 호황 땐 이익을 독식하던 건설사가 불황이라고 해서 리스크를 나누자는 건 이중적 태도”라고 주장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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