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유혹에 눈감은 163, 심오하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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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본선 8강전>
○·구리 9단 ●·이세돌 9단

제14보(153~163)=정력(精力)이 없이는 바둑을 둘 수 없다. 프로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맑고 길게 이어지는 정력이 필수적이다. 구리 9단이 백△에 두어 한번 잡아보라 하자 다시 ‘아수라’의 수읽기 싸움이 펼쳐진다. 심신이 지쳐갈 무렵엔 으레 ‘초읽기’라는 방해꾼이 나타나 달아오른 두뇌를 더욱 뜨겁게 만든다. 이 혼돈을 돌파하려면 수읽기의 힘뿐 아니라 발군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153, 155. 단순해 보이지만 확신 없이는 둘 수 없다. ‘사활’이란 단련된 프로에게도 지긋지긋한 존재. 삶과 죽음은 곧 끝을 의미하기에 1㎜의 오차도 있어선 안 된다. 구리 9단이 158, 이세돌 9단이 161에 두었을 때만 해도 이 사활은 그리 어렵지 않구나 싶었다. 백이 ‘참고도 1’처럼 궁도를 최대한 넓혀도 흑6, 8의 수로 살길이 없다. 하지만 구리 같은 고수가 백1 같은 보리선수를 그리 함부로 두어줄까.

 막연한 불안이 162라는 괴수(怪手)에서 현실이 됐다. 흑의 자충을 노리는 날카롭기 그지 없는 수. ‘참고도 2’ 흑1로 단수하면 백2의 절단으로 수가 난다. 흑3엔 4, 6으로 덜컥 걸려든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이세돌 9단은 163으로 곱게 뻗는다. 유혹에 눈감은 듯한 이 수가 뭔가 심오하다. 결말은 무엇일까.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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