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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공로 인정하지만 재평가는 아직 이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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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ㆍ19 혁명과 관련해 정부가 인정한 공식단체는 세 곳이다. 4ㆍ19 혁명 공로자회, 4ㆍ19 혁명 희생자 유족회, 4ㆍ19 민주혁명회다. 당시 4ㆍ19 혁명을 이끌었던 주역들과 사망자 유족, 부상자 등이 각각 단체를 만들었다. 이들은 이승만 전 대통령 재평가 움직임에 대해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이승만 나름의 업적을 인정하고 공과를 구별해야 한다는 데 이의가 없지만 무고한 학생과 시민들을 총칼로 누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며 “희생자들에게 먼저 용서를 구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넓혀가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광화문에 이승만 동상’은 언어 도단
4ㆍ19 혁명 공로자회 이기택(74ㆍ민주평통 수석부의장) 회장. 그는 “이 대통령의 공도 인정해야겠지만 과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1948년 건국 당시 상황을 거론했다. “건국헌법의 정신은 한마디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그 시기에 아주 중요한 결단을 내린 것이다. 요즘 와서 생각하면 민주주의 국가로 건국된 게 참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전 대통령의 건국정신은 세월이 흘러도 인정할 점이 충분하다.”

하지만 이런 건국정신이 국정을 운영해가는 동안 크게 훼손됐다는 게 이 회장의 지적이다. “독재체제가 강화되고 정권 연장을 위해 사사오입 개헌을 강행하면서 이 전 대통령 스스로 건국정신에 오점을 남겼다”며 “폭력정치와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급기야 3ㆍ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학생과 시민들에게 경찰이 무차별 발포를 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됐다”고 진단했다.

1960년 419 혁명 당시 시위대가 서울 시내를 행진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 회장은 특히 이승만 기념사업회가 서울 광화문 광장에 이승만 동상 건립을 추진하는 데 대해 “51년 전 총칼에 쓰러진 시체들이 깔려있던 광화문에 동상을 세운다는 게 말이 되느냐. 언어도단일 뿐”이라며 반발했다. 이 회장은 “지금은 국민 단합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라고 전제한 뒤 “적잖은 국민들이 동상 건립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요란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자칫 국민 분열의 또 다른 씨앗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옛날부터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좀 더 겸손하게 건국의 공을 기리는 정도의 기념사업을 하는 게 현명한 태도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피해자 입장에서 먼저 용서하고 화해할 의향은 없느냐’는 질문에는 당위성을 인정하나 현실적으로는 결코 간단치 않은 문제라고 했다. “전쟁까지 치른 북한도 같은 민족이라고 해서 통일을 추진하는 마당에 우리끼리 잘잘못을 따지며 영원히 등을 돌릴 수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시기적으로 좀 빠르지 않나 싶다. 지금도 병상에서 고통받고 있는 부상자들과 반 세기 동안 회한을 안고 살아온 유가족들이 적지 않은데 무조건 먼저 용서하라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언젠가 화해의 시대가 와야겠지만 지금은 서로가 자중할 때인 것 같다.”

피해자에게 먼저 족쇄 풀라는 건 억지
오경섭(69) 4ㆍ19 민주혁명회장은 4ㆍ19 당시 고교 3학년이었다. 그는 서울 미아리에서 수천 명의 학생ㆍ시민들과 함께 시위하다 복부에 총을 두 발 맞고 쓰러졌다. 오 회장은 “건국 대통령의 역사는 그것대로 인정해야겠지만 186명이 죽고 6000명 이상이 부상당한 역사는 지우려야 지울 수 없는 것”이라며 “국민들에게 제대로 사과 한 번 안 했는데 어떻게 용서를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당시 우리는 무장세력도 아니었고 체제전복 세력도 아니었는데 같은 동족, 그것도 어린 학생들에게 무차별 발포를 감행했다.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싶다면 먼저 진심 어린 사과부터 한 뒤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또 ‘이승만의 공과는 구별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오 회장은 “조선 시대를 봐라. 시간이 흘렀다고 연산군과 광해군을 쉽게 복원해줬느냐. 역사적 평가는 후대의 사가들에게 맡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화(73) 4ㆍ19 혁명 공로자회 상근부회장도 “무고한 시민의 희생이 없었다면 모르겠지만 수많은 사람이 죽고 유족들은 지금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상황에서 자극적인 신문 광고를 내는 건 너무 몰염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동일본 대지진에 성금을 걷어줬음에도 독도는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을 보고 우리가 얼마나 분노했느냐”며 “광화문에 4ㆍ19 기념탑도 못 세우고 있는 마당에 가해자 동상을 세우자는 건 4ㆍ19 혁명 희생자들을 욕보이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부회장은 이어 “천안함 폭침에 가족을 잃은 희생자들이 북한을 용서할 수 있겠느냐. 아직 4ㆍ19 세대는 끝나지 않았다. 진정 화해하고 싶다면 진심 어린 사과부터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단체의 전대열 대변인은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의 예를 들었다. “브란트는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사람이 아닌데도 서독 총리가 되자마자 이스라엘로 가서 유대인 희생자 묘소에 헌화하고 잘못을 빌었다. 이 전 대통령 추종자들도 4ㆍ19 혁명 희생자들에게 먼저 용서를 비는 게 순리다. 피해자인 우리에게 먼저 족쇄를 풀라고 요구하는 건 앞뒤가 뒤바뀐 주장이다.”

박종구(71) 전 4ㆍ19 민주혁명회장은 “우리 세대는 이 전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미워하거나 그의 객관적 업적까지 부정할 마음은 전혀 없다. 다만 있는 그대로, 공정하게 평가하고 싶다는 게 우리 세대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애쓴 사람임에는 틀림없지만 아무리 냉정하게 공과를 구분하더라도 총칼로 국민의 피를 흘리게 한 건 지울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박 전 회장은 4ㆍ19 혁명의 의미가 많이 퇴색돼 가는 데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4·19 혁명 1년 뒤 군사정권이 들어서는 바람에 90년대 문민정부 이후에야 올바른 재평가가 이뤄졌다. 그런 의미에서 4ㆍ19 혁명은 아직도 미완의 혁명이다. 지금 자라나는 세대들은 4ㆍ19 혁명이 뭔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일선 학교에서 체계적인 교육이 시급하다.”

박신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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