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더 라이트 : 악마는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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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연기파 배우 앤서니 홉킨스(왼쪽)의 이름값을 보여주는 ‘더 라이트: 악마는 있다’.


2008년 영국 일간지 텔리그래프는 “바티칸이 수백 명의 퇴마사를 양성해 전세계에 파견할 계획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악마주의에 대한 숭배가 커져가고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조치라는 것이었다. 가톨릭의 중심인 바티칸이 악령의 존재를 인정한 것이다. 며칠 후 바티칸은 이 보도를 부인했다. 이에 흥미를 느낀 한 저널리스트가 퇴마의식을 배우기 위해 로마로 온 미국인 신부를 취재했고, 그의 집필 제안서를 영화화한 게 ‘더 라이트: 악마는 있다’다.

 퇴마는 ‘엑소시스트’(1973년) 이래 할리우드 공포영화의 단골소재다. 이 영화는 ‘신은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엑소시스트’ 아류작보다 좀더 철학적이다. 주인공은 장의사 아버지 밑에서 그리 행복하지 못한 유년시절을 보낸 마이클(콜린 오도노휴). 그는 집을 떠나기 위해 신학생이 된다. 종신서원을 망설이던 그는 “장학금이 학자금 대출로 전환된다”는 말에 바티칸으로 떠난다. 거기서 퇴마의식을 행하는 신부들을 보지만 여전히 냉소적인 태도를 버릴 수 없다. 수천 번의 퇴마 경험이 있는 루카스 신부(앤서니 홉킨스)를 만난 마이클은 도저히 이성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이한 현상을 목격한다.

 ‘더 라이트’는 퇴마물의 관점에서 보면 딱히 새로울 건 없다. 특수효과를 남발하는 대신 상당 부분 연기파 앤서니 홉킨스의 ‘자체발광’ 연기에 기댄다. 악의 기운이 깃든 사람들은 10대 소녀고 어린아이고 할 것 없이 욕설과 악담을 내뱉고 미쳐 날뛴다. 이들보다 더 섬뜩한 건 루카스 신부가 점점 악의 기운에 물들어가는 과정. 악령에게 사로잡힌 그의 얼굴이 곰팡이가 피듯 시꺼멓게 변해가는 장면이 기억에 깊이 남는다.

 “회의론자들은 항상 증거를 원하지. 하지만 증거를 찾고 나면 대체 어쩔 건가”라는 루카스 신부의 질문, 마이클이 피를 토하듯 내뱉는 “악령을 믿습니다. 그렇기에 신의 존재도 믿습니다”는 고백 등은 이 영화가 단순히 흥미를 겨냥해 기획된 것이 아님을 짐작하게 한다. ‘치열하게 의심해본 사람만이 진정으로 믿을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주는 간단치 않은 영화다. 감독 미카엘 하프스트롬. 2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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