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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 20시간 올스톱 … “내부서 바이러스 심은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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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3일 오후 전산장애 사실을 알지 못하고 서울 충정로 농협 중앙본부점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찾은 한 고객이 발길을 돌리고 있다. [변선구 기자]


3000만 명에 달하는 농협 고객의 금융거래가 20시간 동안 전면 중단됐다. 창구 입출금을 제외한 나머지 거래는 13일 밤늦게까지도 재개되지 못했다. 금융권 전산장애 사태 중 최악이다. 농협은 이틀째 정확한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전산장애는 12일 오후 5시쯤 금융거래 중계서버(IBM서버)의 시스템 파일이 멋대로 지워지면서 시작됐다. 농협 IT본부는 확산을 막기 위해 곧바로 전체 시스템을 차단하고 복구 작업에 들어갔다. 파일 삭제 명령을 보낸 건 전산협력업체 직원의 PC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 직원은 이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농협 관계자는 “파일 삭제가 직원의 실수로 발생한 것인지, 고의인지, 프로그램 자체 오류인지를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선 변종 바이러스가 원인으로 의심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내부에서 누군가 바이러스를 심은 게 아닌가 싶다”며 “안철수연구소 직원까지 총 출동해 원인을 찾는 중”이라고 말했다. 내부 직원 소행설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 시스템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만큼 내부자와 관련 있을 것”이라고 봤다.

 농협은 운영시스템(OS)을 다시 까는 데 시간이 걸려 복구가 지연되고 있다며 “고객 정보가 손상됐을 가능성은 작다”고 밝혔다. 운영 서버와 별개의 데이터베이스 서버에 고객 정보가 저장돼 있어 손상되진 않았을 거란 설명이다.

 이틀째 인터넷 뱅킹·현금자동입출금기(ATM) 등을 통한 금융거래가 중단되면서 농협중앙회와 단위농협 고객들은 적지 않은 불편을 겪었다. 이날 오전 경기도 화성시 병점동의 태안농협에선 농사 준비자금을 찾으러 들렀던 조합원들이 거래를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잦았다. 조합원 김모(63)씨는 “농기계를 빌리고 농자재 살 돈을 찾으러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간다”며 “복구가 늦어져 농사일에 차질이 생길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점 직원들도 빗발치는 고객들의 전화에 일일이 응대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지점 관계자는 “안면이 있는 조합원들은 이해를 해주는 편이지만 언제쯤 복구될지 알 수 없어 우리도 답답하다긴 마찬가지”고 말했다.

 광주광역시 서광주농협 치평지점도 하루 종일 고객들로 붐볐다. 온라인 거래가 되지 않자 직접 지점을 찾는 고객들이 크게 늘면서다. 오후 1시쯤 창구 업무가 재개됐지만 그나마 계좌이체와 입출금 내역 확인만 가능했다. 지점 직원 8명이 모두 창구 업무에 매달렸지만 고객들의 발길이 이어지자 4시30분까지던 근무시간을 30분 연장하기도 했다. 주부 김모(37·광주시 서구 풍암동)씨는 “친구가 돈을 송금했다고 하는데 전화 자동응답시스템으로는 확인이 안 된다고 해 신분증을 가지고 직접 나왔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 서초동 농협중앙회 법조타운지점은 한산했다. 업무 마감을 앞둔 시간이라 평소 같으면 대기순번이 150번까지 이어지는 곳이지만 시스템 마비 소식이 알려지면서 아예 지점을 찾는 것도 포기한 고객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점 관계자는 “오전에는 손님들이 입금액을 맡기고 확인서를 받아가면 이후 입금 확인 문자메시지 전송하는 방법으로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고 말했다.

 농협의 허술한 대응에 분통을 터뜨리는 고객도 많았다. 강백향(43·수원시 화서동)씨는 전날 집 근처의 농협 현금인출기에서 급하게 필요한 돈 30만원을 빼려다 안 돼 낭패를 봤다. 강씨는 “잠시 기다리면 되겠지 하고 10여 분 동안 수차례나 반복해서 다시 해봤지만 허탕이었다”며 “두 시간 뒤 이제는 됐겠지 하며 다시 찾아가 시도해봤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몇 시간 이상 문제가 생기면 즉각 고객들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라도 보내주는 서비스를 왜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글=한애란·유지호·최선욱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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