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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55개국 진출, 해가 지지 않는 커피 제국의 황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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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호 32면

10여 년 전부터 ‘별다방’ ‘콩 다방’ 같은 닉네임으로 외국계 커피전문점들이 한국에 들어왔다. 이들은 한국전쟁 이후 오랜 기간 우리와 고락을 같이해 온, 담배 연기로 가득 찬 어두컴컴한 추억의 동네 다방을 밀어냈다. 그중에도 스타벅스 체인은 단시일 내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도시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대도시 대형빌딩 1층이나 지하철역 주변 어디서나 스타벅스의 인어 로고를 볼 수 있다. 비싼 커피값을 내고 스타벅스에서 수다를 떨던 우리 여성들이 한동안 ‘된장녀’라는 신조어에 시달리기도 했다.

박재선의 유대인 이야기 스타벅스 CEO 하워드 슐츠

1999년 외환위기 말기에 서울 한 여자대학 근처에 첫 매장을 설치하면서 한국에 진출한 ‘별다방’은 현재 전국적으로 320개가 넘는다. 전 세계 55개국에서 매주 6000만 명이 이 커피점을 찾는다. 스타벅스의 대성공에 자극받은 우리 토종 커피전문점들도 크게 약진하고 있다. 스타벅스는 이렇게 전 세계 커피문화를 바꿨다.

스타벅스의 최고경영자(CEO)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사진)는 53년 뉴욕 브루클린 빈민가 출생의 유대인이다. 유대인이 모두 부자는 아니다. 슐츠의 부모는 가난했다. 그는 체육특기생으로 노스 미시간대(공립)를 졸업했지만 프로 미식축구선수가 되기에는 장래성이 없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그는 먼저 복사기로 유명한 제록스사의 외판영업사원으로 들어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슐츠는 이것도 그만두고 스웨덴 가정용품 업체인 하마플라스트로 취업연수를 떠난다. 82년 슐츠는 시애틀로 가 그곳에서 유대인 동료 3명이 경영하던 스타벅스 커피점에 마케팅 담당으로 합류한다. 식음료에 유독 관심이 많았던 슐츠는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유럽식 에스프레소에 반한다. 87년 슐츠는 380만 달러를 들여 스타벅스를 인수하고 자신이 별도로 경영하던 ‘일 지오날레’ 커피점과 통합하면서 사업을 확장한다.

스타벅스가 오늘과 같은 경이적인 성공을 거둔 데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스타벅스 이전 미국에선 밍밍한 숭늉 같은 커피가 대세였다. 원두커피는 한정된 고객층에 국한됐다. 그래서 슐츠는 원두를 기초로 한 다양한 상품을 개발해 원두커피를 대중화했다. 또한 그는 커피점을 단순한 음료매장이 아닌 감성적 분위기를 찾는 도시인의 우아한 대화공간으로 만들면 성공할 것으로 확신했다. 이 두 가지 슐츠의 의도는 적중했다.

슐츠는 권위적인 경영방식을 지양하고 직원들을 상하 관계가 아닌 동업자 개념으로 대했다. 이 가족적인 유대는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바로 그가 주장하는 인성경영이다. 한 유대인 청년의 창의적 아이디어가 코카콜라와 맥도날드에 이어 연매출 100억 달러가 넘는 식음료 부문의 또 다른 세계화 브랜드파워를 만들어 냈다.

사업이 번창하자 슐츠는 한눈을 팔기 시작했다. 2000년 그는 커피사업을 동료 전문경영인에게 맡긴다. 그러곤 한때 NBA 프로농구팀 시애틀 수퍼소닉스의 구단주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동료 유대인 댄 레비탄과 함께 ‘매버론’이라는 투자회사도 차린다. 음악 CD와 DVD 등 엔터테인먼트사업에도 투자한다.

그가 느긋하게 업종 다변화를 모색하던 중 맥도날드와 던킨도너츠 등이 뒤늦게 커피시장에 뛰어든다. 이들의 저가 커피 공세로 스타벅스는 고전을 면치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2007년 시작된 미국발 금융위기로 스타벅스의 주가는 급락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슐츠는 2008년 1월 스타벅스 CEO로 복귀한다. 빛바래지 않은 그의 능숙한 경영 솜씨로 스타벅스는 짧은 구조조정기를 거쳐 다시 정상화된다. 그리고 그는 올해 새로운 시도인 원두 맛을 간직한 인스턴트커피 ‘비아(Via)’를 전 세계에 출시하면서 다시 승부수를 던졌다.

성공신화가 있으면 구설도 반드시 따른다. 국제적으로는 스타벅스가 맥도날드·코카콜라와 같이 미국 신제국주의의 첨병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또한 이스라엘 건국 50주년 공로상을 받은 슐츠에 대해선 ‘극렬 시온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혀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는 스타벅스의 진출을 허용치 않는다. 2007년 미국의 한 소비자단체는 스타벅스의 제품 중 대형 바나나모카커피와 바나나크림 크런치바 등을 맥도날드에 버금가는 비만 유발식품이라고 고발했다.

슐츠는 스타벅스 같은 대형 커피전문점의 출현이 주요 커피생산국의 경제성장과 고용 증대에 큰 도움을 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다. 우선 국제 대형 커피기업으로부터의 공급 확대 요구에 맞춰 영세한 커피생산국들이 원두 생산량을 무리하게 늘리다 보니 공급과잉으로 인한 원두값 폭락현상이 야기돼 생산자들은 도산위기에 몰렸다. 특히 슐츠가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한다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산(産) 아라비카종 원두 생산자들은 과잉생산의 최대 피해자다. 생산지에서 ㎏당 2달러쯤 하는 원두가 매장에서는 4달러짜리 수십 잔으로 둔갑한다면 이 엄청난 마진은 도대체 누가 먹는지 알 길이 없다. 중간상인들은 가공(로스팅)·물류·홍보·마케팅 비용 등이 포함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날로 영악해지는 소비자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결국 스타벅스 같은 대형 커피점의 출현으로 수출업자·수입업자·가공업자·물류업자·매장 등은 크게 재미를 봤다. 그러나 고급 원두 생산지인 에티오피아·케냐·인도네시아·자메이카 그리고 신흥생산국인 베트남 등지의 커피 경작인들은 노동력 착취라는 희생을 감수했다. 스타벅스 매장에 퍼지는 진한 원두 커피향이 생산지 노동자의 눈물과 오버랩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슐츠의 인성경영도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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