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이온가속기·기초연구원 한 곳에 … 분원, 다른 곳 갈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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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 쪼개기’ 논란이 8일 새 국면을 맞았다. 청와대가 중이온 가속기와 기초과학연구원은 한 곳에 두되 다른 지역에 분소(site-lab)를 둘 수 있다는 ‘원안’을 강조하면서다. 이에 따라 핵심 시설이 분리될 것이란 우려는 잦아들었지만, 분소의 규모에 따라 분산 배치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게 됐다. 임태희(사진) 대통령실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중이온 가속기와 기초과학연구원을 분리하는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중이온 가속기와 기초과학연구원 같은 핵심 시설을 같은 곳에 두는 것을 보고 ‘통합’이라고 이름을 붙일 것이냐, 아니면 분원(분소) 같은 것을 다른 데 두는 것을 봐서 ‘분산’이라고 부를 것이냐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입지선정위원회에서 그런 용어도 규정해야 할 일”이라 고 밝혔다.

 임 실장의 얘기는 2007년 대선 때 ‘중이온 가속기와 기초과학연구원 등 핵심 시설은 충청권에 두고 충북 오송·오창, 대전의 대덕과 연계한다’는 내용의 ‘C-벨트’안, 그리고 지난해 1월 교육과학기술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했을 당시 C-벨트를 확장해 대구·울산·포항·부산 등 동남권과 천안·아산·충주·원주 등 중부권, 전주·광주 등 서남권에 분소를 둘 수 있도록 한 ‘K-벨트’ 안과 맥락을 같이한다. 과학벨트 핵심 시설은 한 곳에 두지만 일부 연구기능은 다른 곳으로 보낼 수 있다는 입장을 임 실장이 다시 한번 확인해 준 셈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R&D 예산이 대폭 늘어나는 만큼 분소의 규모도 당초 계획보다 커질 수 있다”며 “충청권도 섭섭하지 않고, 다른 지역도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말했다. 전체 3조5000억여원에 달하는 과학벨트 예산 중 2조3000억여원은 중이온 가속기와 기초과학연구원이 들어가는 지역에 쓰고, 나머지 1조2000억원은 분소의 연구개발(R&D)에 투입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중이온 가속기와 기초과학연구원을 한 곳에 둘 것이란 원칙이 확인되면서 과학벨트 분산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다소 수그러들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캠프 참모 출신으로 과학벨트 공약 홍보를 담당했던 한나라당 강승규 의원은 “ 가속기와 연구원만 같이 들어서면 (다른 걸 분산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 차명진 의원도 “두 핵심 시설을 한 곳에 세우겠다는 입장이 재확인돼 다행”이라고 했다.

 문제는 임 실장이 언급한 ‘분원’에 어느 정도의 예산이 투입될 것인가다. ‘분원’ 투자 규모가 클수록 기초과학연구원을 실질적으로 분리하려는 것이란 반발이 나올 수 있다. 물리학자 출신인 한나라당 박영아 의원은 “분소와 관련한 정부의 당초 계획은 인력과 예산의 60% 이상은 본원에 둬야 한다는 것이었다”며 “이 계획이 잘 지켜져야 과학벨트의 ‘집적성’이 보장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전병헌 정책위의장도 “과학벨트의 역량이 분산되는 식은 곤란하다”며 “분소를 두는 건 부차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고정애·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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