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내린 것 맞나” … 정유사 전화 불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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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정유사들이 난리다. 소비자들 항의 때문이다. 이달 7일부터 휘발유·경유 값을 L당 100원씩 내리겠다고 했는데, 왜 소비자가는 이틀째인 8일에도 거의 그대로이냐는 것이다. 정유사들에 따르면 8일 하루에만 콜센터에 이런 내용의 항의전화가 정유사별로 수천 통씩 빗발쳤다. 인하 첫날인 7일에는 고객들이 주로 주유소에 항의했으나 이틀째가 되면서 항의의 불길이 정유사로 옮겨붙은 것이다. 이에 정유사들은 기름값 인하 안내 현수막을 주유소에 내거는 등 설명과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8일 오후 2시 현재 전국 주유소의 평균 휘발유 판매 가격은 1950.29원이었다. L당 100원씩 인하하기 전인 6일(1970.92원)보다 20원 정도밖에 안 내렸다. 같은 기간 경유의 하락폭도 17원에 그쳤다. 소비자들이 “L당 100원씩 내리겠다던 약속과 다르다”고 하는 이유다.

 나름대로 사정은 있다. GS칼텍스·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 3사는 실제로 7일 0시부터 공급가를 L당 100원씩 내렸다. 이들 정유사가 직접 운영하는 직영주유소는 인하 폭을 그대로 소비자가에 반영했다. 하지만 자영업주들이 정유사와 계약을 하고 운영하는 자영주유소가 문제다. 이들은 “인하 전, 비싼 값에 받아놓은 휘발유·경유를 다 팔지 않고 값을 내리면 손해가 난다”는 입장이다. 기름값이 계속 오를 것으로 보고 지난달 말께 저장 탱크를 꽉 채워놓은 주유소도 상당수로 알려졌다. 이런 곳은 앞으로도 1~2주간 기름값을 내리기 힘든 처지다.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은 일단 “국민들의 부담을 줄이려는 노력에 동참해 달라”는 내용의 협조 요청 공문을 모든 주유소에 보냈다. 그러나 자영주유소들이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바로 값을 내릴지는 미지수다.

 SK에너지는 사정이 다르다. 공급가나 주유소 판매가를 내리지 않았다. 대신 나중에 신용카드 사용액 청구서에 L당 100원씩 할인된 금액이 찍혀 나오거나 포인트를 쌓아주도록 했다. 그러니 주유소에서는 값을 인하할 여지가 아예 없다. 이 때문에 오해한 고객들로부터 ‘기름값을 왜 내리지 않았느냐’는 항의가 거세다. SK에너지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전국 주유소에 인하 방식 안내 전단이나 현수막을 붙이고, 고객들에게 설명하기 위한 도우미를 파견했다.

 SK에너지는 주유소로부터도 항의를 받고 있다. 경쟁하는 인근의 타사 직영 주유소는 휘발유값 안내판의 가격을 L당 2000원대에서 1900원대로 내렸는데, SK주유소는 그러지 못해 손님을 뺏길 판이라는 것이다.

 액화석유가스(LPG) 업계도 속앓이 중이다. 정유사들이 기름값을 내린 불똥이 튈까봐서다. 최근 LPG수입가가 올랐지만 업체들은 이를 국내 가격에 반영하지 못했다. 정부가 1월 말 LPG 회사들에 “가격 인상을 일단 자제하고, 손해가 난 부분은 나중에 천천히 반영해 달라”고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기 때문이다. 이에 부응해 정유사들은 2월부터 국내 LPG 가격을 동결했다. 그러다 최근 들어 수입가가 안정되면서 슬슬 못 받았던 부분을 국내가에 반영하려던 참이었다. 익명을 원한 LPG업계 관계자는 “이런 판에 정유사들이 기름값을 내려 LPG 가격을 올리기가 껄끄럽게 됐다”고 털어놨다.

권혁주·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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