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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뉴스]세계는 지금 Y2K 테러 비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2월 14일 미국 워싱턴州 앤젤레스港의 페리 터미널에는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州의 빅토리아를 출발한 배 한 척이 도착했다. 배에서 맨 마지막으로 내린 렌터카 운전자는 미국 세관 검사원의 통상적인 질문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순간 세관 직원의 눈에는 그가 밴쿠버를 출발해 시애틀로 가려 했음을 보여주는 여정표가 눈에 띄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밴쿠버에서 곧바로 시애틀로 가면 되는데도 굳이 더 먼 앤젤레스港을 거쳐 가는 이유가 수상했기 때문이다. 차 트렁크에는 배낭 외에 아무 것도 없었지만 차체 아랫 부분에서 폭탄 제조용 재료로 보이는 것들이 발견됐다.

美-캐나다 국경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은 테러리스트들이 연말연시를 전후해 세계 곳곳에서 테러를 획책하고 있다는 우려를 고조시켰다. 미국 정보당국은 테러집단뿐 아니라 미국내 민병대와 정신나간 단독범들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알제리 태생으로 실제 이름이 아메드 레삼(32)
으로 밝혀진 그 운전자는 위조 캐나다 여권으로 여행하고 있었으며 가짜 캐나다 운전면허증 2개도 지니고 있었다(면허증 사진은 같았지만 이름은 서로 달랐다)
. 수사관들은 그가 美 북서부 태평양 연안과 캘리포니아州 지도 외에 2장의 페리 승선권을 소지한 점으로 미루어 검문 당시 탈출한 공범이 있었을 것으로 믿는다. 수사 결과 레삼은 12월 14일 밤 시애틀의 한 호텔에서 묵은 뒤 이튿날 런던행 비행기를 탈 계획이었다. 호텔 위치도 수천 명의 인파가 새 천년을 맞기 위해 모여들 시애틀의 명물 첨탑 스페이스 니들에서 멀지 않았다. 美 연방수사국(FBI)
은 그가 다른 테러리스트들에게 폭탄을 전달해주는 속칭 '노새'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그의 자동차에서는 9볼트짜리 배터리와 카시오 시계가 부착된 회로판, 약 53kg의 폭발물 제조용 요소(尿素)
, 약 6.3kg의 황산염 및 다량의 니트로글리세린이 발견됐다.

연방 당국은 그가 알제리의 한 과격집단과 연관돼 있는 것으로 보며, 케냐와 탄자니아 주재 미국 대사관 폭파사건(98년)
의 배후 인물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과도 관련돼 있으리라는 것이 美 중앙정보국(CIA)
의 추정이다. 빈 라덴은 현재 아프가니스탄에 은거 중이며 회교도들에게 성전(聖戰)
을 선포한 뒤 전세계 어디서건 미국인을 살해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과연 그가 전세계 테러집단이나 '세포'들을 정말 통제하고 있는지, 아니면 단지 선동적인 언변과 자금공급으로 그들을 고무하려는 것인 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그들은 빈 라덴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고 있다.

지난 12월 초 요르단 경찰은 밀레니엄 이브에 미국인과 이스라엘인들을 살해하려던 회교 과격분자들의 음모를 적발했다. 뉴스위크가 입수한 FBI의 對테러 비밀 문건에 따르면 체포된 그 과격분자들은 오사마 빈 라덴과 관련돼 있으며 그의 지시에 따라 행동했다. 게다가 "CIA는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추종자들이 전세계적으로 5∼15건의 유사한 테러공격을 계획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는 대목까지 나온다. 미국의 일부 정보관리들은 파리와 런던, 특히 예루살렘의 밀레니엄 경축행사가 테러리스트들의 공격목표가 될 가능성을 경고했다.

테러 집단 간의 관계는 베일에 싸여 있지만 빈 라덴이 가장 확실히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테러음모는 12월 초 요르단에서 분쇄된 사건이다. 당시 체포된 13명의 테러범들은 이집트·알제리의 테러집단들과 관련돼 있었다. FBI와 요르단 수사당국에 따르면 그들은 모세가 '약속의 땅'을 맨처음 보았다는 네보山과 한때 예수가 걸어갔다는 요르단 강변을 방문하는 미국인과 이스라엘인들을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그들은 '언제든 조립 가능한 폭발물과 독약'을 사용할 계획이었다. FBI의 한 소식통에 따르면 '독약'은 식수를 오염시키기 위한 독극물과 일종의 독가스 수류탄이었다.

그 사건 며칠 뒤 파키스탄에서는 그 테러범들과 빈 라덴 간의 중간고리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칼릴 알-디크가 체포됐다. FBI는 92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미수에 그친 한 비밀단체 폭파계획도 알-디크가 세운 것으로 믿는다. 알-디크는 보스니아에서도 회교 극단주의자들과 협력해 싸웠으며 이집트·알제리의 테러집단들과도 관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위크가 캐나다 경찰 소식통으로부터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아메드 레삼은 알제리 과격단체인 무장회교집단(GIA)
의 조직원인 사이드 아트마니와 몬트리올에서 한동안 함께 지낸 것으로 보아 그도 GIA와 연관돼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아트마니는 GIA가 95∼96년 저지른 파리 지하철 폭파사건 수사와 관련해 99년 초 파리로 강제 송환됐다. 레삼은 98년 캐나다 이민국에 난민임을 내세워 이민을 신청했지만 그가 GIA 단원이라는 이민 당국의 판단으로 거부된 적이 있다.

빈 라덴은 언제든 자신이 미국 특공대의 공격목표가 될 가능성을 두려워 하는 것 같다. FBI의 對테러 문건에 따르면 그는 최근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경계령을 내리면서 탈리반 지도자 물라 모하메드 오마르의 메시지를 하달했다. 그 메시지엔 "아프가니스탄에서 사는 모든 아랍인은 그의 집으로 들어오는 그 누구에게도 무차별 발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미국의 치안당국은 빈 라덴뿐 아니라 멕시코에서 Y2K 정전사태가 발생할 경우 국경지역에서 일어날지 모를 소요사태에 대한 경계 등 만반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호프먼 워싱턴 지부장은 "미국인들은 전세계적으로 스토킹당하고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며 "결국 그것은 외국인 혐오증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테리리즘의 진정한 승리가 될 집단적 공포는 어쩌면 새 천년의 통과의례일지 모른다.

Daniel Klaidman
Evan Thomas 워싱턴지국 기자
뉴스위크한국판(http://nwk.joongang.co.kr) 제 410호 1999.12.29/20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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