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지서 야구부 20명이 왔다 … 폐교위기 학교가 되살아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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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창단식을 가진 정읍 이평중 야구부 학생들이 “농촌지역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보여 주겠다”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뉴시스]


밤에는 운동장에서 스윙연습만 한다. 어둠을 밝혀 줄 조명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비가 오면 빈 교실을 찾아 피칭훈련을 되풀이 했다. 하지만 야구부는 폐교위기에 내몰린 학교를 되살려냈다. 전북 정읍시에 있는 이평중학교 얘기다.

 이평중학교는 정읍시 이평·영원 등 2개면 지역에 걸쳐있는 유일한 중학교다. 학생이 한때는 1000여명이나 될 정도로 많았지만 최근 들어 급속하게 줄었다. 지난 2월 졸업생이 빠져 나가면서 전교생은 13명까지 떨어졌다. 이대로 가면 몇 년 내 문닫을 수 밖에 없는 상황까지 왔다.

 해마다 아이들이 줄기만 하던 학교에 올 들어 갑자기 20명의 외지학생이 몰려왔다. 지난 1일 창단식을 가진 야구부 덕이다. 야구 선수는 모두 20명(2학년 2명, 1학년 18명)으로 대부분 광주·전주·인천 등에서 왔다.

 조남진 교장은 “야구부 학생들이 매년 20여 명씩 들어 오면 앞으로 전교생이 100명 이상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라며 “야구부가 학생뿐 아니라 농촌 주민 모두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야구부 창단을 이끌어낸 이는 이 지역출신인 김성혁(39) 감독이다. 군산상고 등에서 선수생활을 그는 10여 년 전 고향에 내려 와 정읍 사회인야구단, 리틀야구단을 지도해 왔다.

김 감독은 “정읍에 학교야구부가 없어 야구를 하고싶어 하는 어린이들이 타지역으로 떠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워 야구부 창단을 제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 측을 설득하는 한편, 리틀야구단 어린이들과 함께 삽·호미를 들고 잡초 무성하던 운동장의 풀을 뽑고 땅을 고르는데 정성을 쏟았다. 또 전주·광주 등 리틀야구단을 수십번씩 찾아 다니며 학생들을 보내주도록 설득했다.

 어렵게 야구부를 만들었지만 시설은 열악하기만 하다. 운동장은 실제 야구장의 절반 밖에 안될 정도로 좁다. 센터의 경우 120m 길이가 나와야 하는데 75m에 불과하다. 담장에 부딪치면 다칠까 봐 외야연습을 못한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라이트 시설은 엄두도 못 낸다. 때문에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공을 볼 수가 없어 방망이를 휘두르는 연습만 한다. 도시학교에서는 필수적인 실내 연습장·피칭머신도 갖추지 못했다.

 합숙소가 없어 학교 주변의 빈집을 숙소로 사용하지만 학생들의 열정은 뜨겁기만 하다. “도시 아이들보다 1시간이라도 더 연습하자”며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운동장으로 나간다. 수업이 끝난 뒤에는 밤 9시까지 비지땀을 흘린다. 휴일에도 집 보다는 학교에 남아 연습을 하겠다고 덤빈다.

 지역사회도 이평중 야구부 돕기에 나섰다. 김생기 정읍시장은 “영파동 쓰레기 매립장에 조성된 야구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주선하고, 교육청과 협의해 지원방안을 찾겠다”고 다짐했다. 야구부 주장인 최광선(2학년) 군은 “박찬호·추신수 선수처럼 미국 메이저리그 무대에 진출, 농촌 어린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 주겠다”고 말했다.

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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