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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기의 귀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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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황영기(사진) 전 KB금융지주 회장(현 차바이오앤디오스텍 회장)이 우리은행장 시절 투자 손실을 끼친 것에 대한 금융당국의 징계가 부당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당초 금융당국의 중징계 처분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중징계를 받은 직후 금융계를 떠났던 그가 다시 복귀할지도 관심거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는 31일 황 전 회장이 징계처분을 취소해달라며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직무정지 3개월 상당의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황 회장이 우리은행장으로 재직할 당시엔 퇴직 임원을 제재하는 규정(은행법 54조 2항)이 없었고, 퇴임 뒤인 2008년 3월에야 입법이 이뤄졌다”며 “금융위의 징계는 규정을 소급 적용한 것”이라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금융위는 2009년 9월 황 전 회장에게 ‘직무정지 3개월 상당’의 중징계를 결정했다. 우리은행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법을 위반하면서 거액을 파생상품에 투자해 은행에 1조원대 손실을 끼쳤다는 이유였다. 당시 중징계 결정은 큰 논란을 불렀다. 임기가 끝난 뒤 발생한 투자 손실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에 대해 찬반이 엇갈렸다. 또 우리은행 종합검사를 하고도 파생상품 투자의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던 감독당국의 책임론도 불거졌다. 중징계를 받은 황 전 회장은 KB금융지주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행정소송이라는 정면승부를 택했다.

 이날 승소 판결에 대해 황 전 회장은 “법원의 승소 판결은 고마운 일”이라며 “금융당국이 금융회사 임직원을 처분하는 데 신중해지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아쉬움도 토로했다. “애초에 법 적용 자체가 잘못된 우스꽝스러운 사건이라, 사건 실체에 대한 판단까지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황 회장이 투자 지시 등 책임질 만한 부당행위를 했는지에 대해 법원은 명확한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

 금융당국이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은 이날 자료를 내고 “법원은 황 회장이 거액 손실과 관련해 책임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며 “판결문이 입수되는 대로 법률 검토를 거쳐 항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급 적용이 문제가 되긴 했지만, 투자 손실에 대해 징계를 내린 것 자체는 옳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이 그대로 확정된다면 금융당국의 입장도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다른 제재에 대해서도 같은 문제 제기가 나올 수 있어서다. 예컨대 신한은행장 시절 금융실명제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중징계를 받은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명예회장도 비슷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과거에도 퇴직 임원에 대한 제재는 있었고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기 위해 2008년 법규를 만든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징계가 취소되면 황 전 회장은 ‘금융권 4년간 취업 금지’라는 처분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한때 금융계 스타 경영인이었던 그가 다시 금융인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황 전 회장은 말을 아끼고 있다. 그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명예회복을 한 걸로 충분하다”며 “앞으로 (지금 하고 있는) 차병원 일을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황 전 회장과 가까운 한 금융권 임원은 “이번 판결로 황 회장은 당연히 금융권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차병원과의 의리가 있기 때문에 거기서 하는 일을 마무리해야 하지만, 기회가 되면 금융권에서 다시 일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구희령·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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