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안 해도 월급 받는 현대차 632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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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현대차 울산1공장의 신형 엑센트 생산라인. 조립 중인 승용차를 실어 날라야 할 컨베이어벨트는 텅 비어 있고, 근로자들은 한가롭게 잡담을 나누고 있다. [이기원 기자]


30일 오전 10시쯤 현대자동차 울산1공장. 작업이 한창일 시간인데도 2개 생산라인 중 신형 엑센트를 조립하는 12라인은 컨베이어벨트가 텅 빈 채 돌아가고 있었다. 근로자들은 생산라인 주변 탁자에 앉아 책을 읽거나 삼삼오오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바로 옆의 11라인. 벨로스터와 신형 엑센트를 번갈아 가며 생산하는 라인이지만 컨베이어벨트에는 신형 엑센트만 듬성듬성 지나갈 뿐 벨로스터는 눈에 띄지 않았다.

 회사 측은 “주문량이 신형 엑센트가 12만5500대, 벨로스터가 6200대나 밀려 있는데도 2개월이 넘도록 공장 가동률은 3분의 1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특히 벨로스터는 1월에 신차 발표만 했을 뿐 지금까지 단 1대도 생산되지 않았다. 울산1공장 소속 3200명의 근로자 가운데 632명은 1월 25일부터 완전히 일손을 놓고 있다. 1091명은 원래 일의 절반만, 1477명은 3분의 1만 하고 있다.

 그래도 회사는 봉급날마다 1인당 평균 350여만원씩 입금해주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8시간씩 정상근무를 한 것으로 간주한 금액이다. 이 추세가 1년 내내 계속되면 근로자들은 휴가비 등을 포함해 연봉으로 평균 6700만원을 받게 된다.

 근로자들이 일손을 놓거나 절반만 일하고도 월급을 다 받는 비결은 노사 간 단체협약 41조 5항에 있다. 1999년 만든 이 조항은 ‘새로운 차종을 생산하거나 시간당 생산속도를 바꿀 때 노조와 사전 협의해 결정하며 (회사가)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다. 노조가 반대하면 신차 생산도, 생산성 향상도 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노조는 이를 근거로 “회사가 사전 협의 없이 새로운 차종 생산을 시작했다”며 작업을 거부하고 있다. 노사는 지난해 12월부터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회사 측은 “신차 생산공정이 최신식이어서 100여 명의 유휴인력이 생겼으니 일손이 달리는 다른 부서로 배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노조는 1명도 빼낼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1공장 근로자가 타 부서로 옮기면 적응하는 데 힘이 들고, 남은 사람은 일 몫이 더 늘어난다”는 게 노조의 반대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현대차의 고위 관계자는 “(과거 파업·폭력시위 등) 급한 불 끄기에 급급해 이런 내용의 단체협약을 맺은 게 화근이 돼 노조의 허락 없이는 공장 가동도 못 할 지경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 신차 생산마저 차질을 빚게 되면 노조원의 일자리도 없어진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울산=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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