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사 빅4 CEO … ‘리딩뱅크’ 진검승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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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 정비를 마친 4대 금융지주사의 진검승부가 시작됐다.

 우리·하나 금융지주는 지난 25일 주주총회를 하고 각각 이팔성·김승유 회장을 최고경영자(CEO)로 재선임했다. 지난해 KB금융의 사령탑을 맡은 어윤대 회장도 이날 첫 정기주총을 치렀다. 이에 앞서 신한금융은 23일 주총에서 한동우 전 신한생명 사장을 새 회장으로 선출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지난해 금융지주사들을 괴롭혀온 ‘CEO 리스크’가 일단락된 모습이다.

 올 정기주총의 분위기는 으레 ‘통과의례’로 여겨지던 예전과 확연히 달랐다. 회장들마다 제각기 작심한 듯 뼈 있는 발언을 쏟아냈다. 어윤대 KB금융 회장은 “지난해 부진을 씻고 최고 2007년 수준의 최고 실적을 반드시 회복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은 “메가뱅크는 모르는 얘기”라며 산업은행 중심의 통합보다는 민영화 주도에 역점을 두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하나금융 김승유 회장은 “외환은행을 반드시 인수해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고 다짐했다.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은 “지난 상처를 씻고 새로운 ‘신한 웨이’를 정립하자”고 강조했다. 달라보이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모두 같은 얘기다. ‘불안요인이 사라진 만큼 영업에 전력해 최고의 금융회사로 거듭나자’는 메시지다.

 4대 금융지주 회장들이 한결같이 ‘파이팅’을 외친 데엔 이유가 있다. 첫째는 갈 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리딩뱅크 경쟁이다. 지난해 연말 KB금융의 총자산은 326조1000억원으로 2위인 우리금융(326조)과의 차이가 1000억원에 불과했다.

3위인 신한금융(309조원)과 이들의 차이도 17조원에 불과하다. 하나금융은 외환은행 인수를 마무리하면 자산규모가 196조원에서 311조원으로 늘어나 단박에 3위 금융지주사가 된다. 한두 해 영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1위가 될 수도, 4위가 될 수도 있는 구도다.

 둘째는 양적 성장의 한계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가 시작된 뒤 금융지주사의 주력인 은행이 예전처럼 대출 확대를 통해 몸집을 불리기가 쉽지 않아졌다. 부동산 시장 침체와 대기업·중소기업, 수출기업·내수기업 간의 양극화, 가계부채 급증 등이 맞물린 결과다. 대출 확대의 효자 노릇을 해온 주택담보대출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말 현재 은행 가계대출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의 비중은 65.9%를 차지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신용대출 등 다른 대출을 늘리기도 쉽지 않다. 가계부채 규모가 800조원에 달하는 등 가계의 상환 능력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최근 성장보다 물가와 가계부채 잡기로 정책목표를 바꾸고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원래대로 축소하는 등 금융권의 대출 늘리기에 제동을 걸고 있다.

 은행 다음의 주력 계열사인 증권·자산운용사들의 영업환경도 낙관할 수만은 없는 처지다. 중동의 ‘재스민 혁명’과 일본 대지진, 원유·원자재값 상승 등 온갖 외부 충격에도 불구하고 국내 주식시장은 지난주 2000선을 회복하는 등 선방하고 있다. 하지만 펀드 이탈이 계속되는 게 문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해외 주식형 펀드 잔고는 지난 24일까지 54일 연속 감소해 사상 최장기 유출 기록을 갈아치웠다. 국내 주식형 펀드 역시 2년 전부터 주가가 오르면 오히려 돈이 빠지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수수료에 의존하는 금융지주사 산하 증권·자산운용사의 수익성도 나빠질 수 밖에 없다.

 총체적으로 파이를 키우기 어려워진 상황인 것이다. 4대 금융지주사들이 올해 ‘내실 다지기’와 ‘안정 성장’에 경영의 초점을 맞추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저절로 커지는 파이를 적당히 나눠먹는 시대는 지났다”며 "금융사들이 새로운 시장과 고객을 찾아나서야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잇달아 영업정지된 저축은행을 인수하려는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우리금융은 지난달 영업정지된 뒤 시장에 매물로 나왔던 삼화저축은행을 인수해 최근 ‘우리금융저축은행’을 출범했다. 우리금융은 올해 안에 한두 곳을 더 인수해 은행-저축은행-캐피탈로 이어지는 고객 층위별 서비스체제를 완성할 예정이다. 삼화저축은행 인수전에 참여했던 신한·하나 금융지주도 올해 내에 저축은행 한 곳 씩을 계열사에 추가할 예정이다. KB금융지주 역시 수익성이 회복되는 대로 저축은행 인수에 나서기로 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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