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 20년 … 전 국민 4800만 명이 “나는 가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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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국내에 노래방이 생긴 지 꼭 20년째다. 처음 문을 연 노래방은 어디였을까. 공식 기록은 없으나 업계에서는 1991년 4월 부산 동아대 앞 로얄전자오락실을 최초로 본다.

그전에도 일본식 가라오케가 있었으나 레이저디스크로 반주를 틀고 홀에서 노래를 부르는 식이었다.

 노래방 1호 주인은 로얄전자오락실을 운영하던 화교 형충당씨. 아싸전자의 가라오케 기계를 개조해 번호를 눌러 노래를 선택하고, 자막을 보며 노래를 부르는 한국식 노래방을 선보였다. 오락실에 작은 방 형태로 노래방 기계 3대(곡당 300원)를 설치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아싸전자는 형씨의 기술을 도입해 요즘 같은 번호 입력형 노래방 기계를 만들었다.


 91년 5월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 첫 등록업체인 ‘하와이비치 노래연습장’이 생겼다. 이후 1년여 만에 전국적으로 1만 개 이상 생겨났을 정도로 노래방 붐이 일었다. 이른바 ‘4800만 가수 시대’가 열렸다. 20년 전 노래방 기기 개발에 참여했던 아싸전자 김승대 부장은 “ 납품 날짜를 맞추기 힘들 정도였다”고 했다. <관계기사 26면>

◆국민적 놀이문화=노래방은 한국인의 회식·놀이문화를 바꿔놓았다. 가사를 보며 노래를 부르는 시스템이 우리의 놀이 감성을 자극했다. 젓가락을 두드리며 노래하던 한국 특유의 회식문화는 그대로 노래방으로 흘러들었다. 점수를 부여하고 코러스를 도입하는 등 노래방 기기도 이용자의 흥을 자극하는 쪽으로 진화해왔다.

93년 김영삼 정부가 청소년 제한을 풀면서 노래방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2009년 현재 전국의 노래방은 3만5684개. 시장 규모는 1조3399억원이다(한국콘텐츠진흥원 통계). 업소당 하루 평균 54명이 찾고 있고, 전국적으로 매일 190만 명이 마이크를 잡고 있다.

◆가요계의 바로미터=노래방 목록을 보면 가요계 히트곡을 점칠 수 있다. 노래방 기기 업체들은 자체 선곡팀을 별도로 운영하면서 히트 가능성이 높은 곡을 골라 기기에 삽입하고 있다. 방송 횟수, 주요 팬층의 나이, 가수의 이력 등을 따져 해당 곡이 상위 20% 안에 들 것인지 예측한다. 장윤정의 ‘어머나’의 경우 노래방에 먼저 깔린 다음 1년 뒤에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해마다 발표되는 노래방 애창곡 목록은 가요계에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차트 가운데 하나다. 한국 대중음악사의 흐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90년대엔 이문세·김건모 등 실력파 가수들의 곡이 상위에 올랐지만, 최근엔 소녀시대·씨엔블루 등 아이돌 그룹의 곡이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강태규씨는 “노래방 덕분에 음악을 감상하는 문화에서 참여하는 문화로 진화했지만 노래방이 유흥업소로 변질되는 부분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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