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talk] (2) 음악가 남궁연의 생선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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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딱지치기·구슬치기·술래잡기를 하며 동네 친구들과 놀던 제 어린 시절에는 “○○야 밥 먹어라”가 정겨운 소리가 아니라 가장 무서운 소리였어요. 놀이에 작별을 고하는 소리였으니까요. 한 명이 빠지게 되면 놀이 자체가 성립이 안 되었거든요.

 오후 6시 만화영화가 끝나고 밖에 나와 친구들과 놀고 있으면 이 공포의 호출이 어느 집에서부터 울릴 것인지 몰라 항상 긴장하곤 했었죠. 엄마의 목소리는 그 시절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었거든요. 먹고사는 것이 최우선이었던 그때만 해도 남의 집 아이까지 먹여 살릴 정도로 여유가 있지 않았죠. 어머니가 부르는 것은 자기 자식만 데려가겠다는 의사 표시였어요. “○○야 밥 먹어야지?”라는 말은 “얘들아, 이쯤 되면 가야 하지 않겠니?”란 의미였어요. 이제 그만 놀고 쫓겨나야 한다는 공포가 있었던 거지요.

 그런데 열 집 중에 한두 집은 “○○야 밥 먹어라”에 이어 3초 정도 시차를 두고 “친구들도 같이 와라”고 할 때가 있었어요. 다같이 밥 먹어도 된다는 기쁜 소식에 그때는 완전히 축제 분위기가 됐죠. 밥 한 끼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있지만, 지금 한껏 고조돼 있는 놀이를 부모님 용인 아래 더 할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컸습니다.

 그 한두 집 중에서 이웃에 사시던 이화여대 김영정 교수님이라는 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분 아들이 저보다 딱 한 해 선배였는데, 그 집에서 놀고 있으면 “유진아 밥 먹어야지. 친구들도 빨리 오면 좋겠어”라며 밥을 챙겨 주시곤 했어요.

 이 말이 들리면 내가 파티에 초대받았다는 기분이 들며 군침이 돌았어요. 그 선생님 집에서 저는 생선전이란 걸 처음 먹어봤어요. 충격적일 정도로 맛있었어요. 턱 뒤에 있는 침샘에서 찌릿할 정도로 침이 분비될 정도였으니까요. 선생님이 이북 출신 특유의 억양으로 “연이야, 일로 와부라우” 하시며 조그마한 아이에게 긴 젓가락으로 맛 좀 보라고 입에 생선전을 넣어주셨던 일도 기억나요.

 그때 제가 네댓 살 정도였는데, 집에 돌아가 어머니 앞에서 설명을 했죠. 노란 건데 딱 깨무는 순간 코에서는 고소한 냄새가 나고 긴 젓가락으로 뒤집으며 익히는 음식이었다고. 그랬더니 어머니가 동그랑땡으로 아신 거예요. 그 다음날 어머니가 동그랑땡을 해주셨는데 밀가루 양념부터 다르더라고요. 친구 집에서 먹었던 생선전은 밀가루 양념과 생선이 한 몸이 돼 어디가 경계인지 모를 정도였는데, 어머니가 해준 건 양념이 군데군데 떨어져 있었거든요. 결국 어머니가 그 교수님께 전화를 해서 제가 얻어먹은 음식 이름을 취재하는 해프닝까지 있었지요. 나중에 어머니가 해주시기는 했지만, 선생님이 해주신 생선전의 맛하고는 정말 달랐습니다.

 지금도 그 생선전이 생각나는 이유는 맛의 충격도 있었겠지만, 선생님이 아들 친구들도 함께 챙겨 주시고 부부가 같이 앉아 밥을 먹으면서 덕담을 해주셨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린 저에게도 인격적으로 대우해 주시고, 배려해 주신다는 걸 느낄 수 있었거든요. 이웃끼리 느끼는 정, 저녁 밥상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따뜻한 정이 아직도 고마워 그 생선전이 기억에 남아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에게 생선전이란, 이웃의 정 그리고 친구 어머니의 정이랍니다.

정리=손민호 기자

●남궁연은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드럼 연주가이자 재즈 뮤지션. 요즘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고 부르고 다닌다. 패닉·신해철·싸이·이은미 등의 앨범에 참여했고, 여러 편의 영화와 드라마 음악을 제작했다. 2008년부터 동덕여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현재 대통령 직속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지난해 스위스 다보스포럼 한국의 밤 총괄기획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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