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상하이 소동’이 찜찜한 진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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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상하이 총영사관에서 문제가 터지자 외교부 관리들은 외부에서 온 정치인(김정기 전 총영사)의 잘못으로 몰아갔다.”

 국무총리실의 ‘상하이 스캔들’ 조사 발표(25일)를 앞두고 이명박(MB) 대통령 측근 정치인들이 국내에서 이런 푸념을 했다고 한다. 보은 인사란 비판을 받았던 김 전 총영사 임명도 두둔했다고 한다. 공관의 문제를 잘 아는 MB가 개혁 차원에서 정치인을 임명했는데 결과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비판의 화살을 외교관들에게 돌렸다고 한다.

 당국의 발표로 속칭 ‘상하이 스캔들’은 ‘심각한 공직기강 해이 사건’으로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일부 언론이 제기한 스파이 의혹은 실체가 없다고 한다. 몇몇 영사의 부적절한 처신에서 촉발된 문제가 뒤늦게 스파이 사건으로 부풀려 보도되는 과정을 지켜본 이들이라면 사기 당한 느낌마저 들 것이다.

 스파이 사건이라는 물증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이번 사건은 ‘상하이 소동’ 정도로 봐도 무방해 보인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가 놓치고 있는 이 사건의 진짜 치부를 한번쯤 짚고 싶다.

 상하이 현지에서 총영사관 관계자와 교민들을 만나면서 중국 여성의 정체보다는 이번 사건을 초래한 썩은 토양이 무엇인지가 가장 궁금했다. 엘리트 영사들의 일탈에 구조적 배경이 있을 거라고 짐작해서다.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대다수 외교관들에 비해 일부 영사의 처신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렇지만 영사들의 넋을 빼놓은 것은 한 중국 여성만은 아닌 듯했다. 해악의 근원을 더듬어 가다 보니 우리 사회의 후진적 관행이 엿보였다.

 가장 비판받을 대상은 정치권이다. 여의도에서 큰소리치는 정치인들은 해외에서 도를 넘을 정도로 외교관들을 수족처럼 부려먹고 있다. 실속 없이 폼만 잡기 위해 중국 정계 고위 인사들과의 면담을 당연한 듯 요구한다. 상하이에서 엑스포가 열렸던 지난해는 더 심했다고 한다. 한·중 수교 초기와 달리 세계 2위 강대국으로 떠오른 중국의 유력 인사를 만나기는 갈수록 어려운데도 여의도는 이런 변화를 무시한다.

 “인사에 영향을 끼치는 정치인이 해외 행차 하겠다는데 규정을 내세워 외면할 간 큰 외교관은 많지 않다”고 외교관들은 하소연한다. 승진 경쟁에 내몰린 엘리트 외교관들이 정치권의 부당한 외압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관행이 바뀌지 않는 한 유사한 소동은 언제든지 또 터질 거란 얘기다.

 언론의 후진적 행태도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중국인 여성의 사진과 이름은 경쟁적으로 공개했다. 불법이 확인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인격권 보호에 둔감했다. 반면 한국인 남성들의 얼굴은 줄곧 보호해 줬다. 국적에 따라 이중잣대를 댄다면 선진 언론이 아니다. 자칫 외교 문제가 될 사안을 다루면서 신중한 보도 태도가 부족했다.

 중국 땅에서 나라 망신까지 당하고도 한국 사회가 교훈을 제대로 얻지 못하고 관음증(觀淫症)만 즐겼다면 그 비용이 너무 커 보인다. 사건의 마침표를 찍기 전에 다 함께 되돌아볼 일이다.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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