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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화가 이불씨 신년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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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는 것은 하나의 상징에 지나지 않습니다. `새 희망 찾기'가 이뤄지지 않으면 이런 시간적 매듭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주위의 동요와 관계없이 좋은 작가가 되고, 자신의 일에 충실하며 이웃과 더불어 행복하게 산다는 소박함으로 새해를 맞으려 합니다.'

지난 8월 한국인으로는 세번째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설치작가 이불(35)씨의 새해 맞이는 무척 담담하다. 인간 역사를 서기로 세기 시작한 것이 7세기의 한 수도원이라는 그는 20세기와 21세기를 구태어 나눠 자신을 얘기하고 싶지 않다며 가장 중요한 주제는 언제나 `내가 지금 어떻게 사는가'라고 말했다.

따라서 권력 메커니즘의 생성과 작동, 이동을 살피고 그 편중현상을 작품으로 비판하는 일은 앞으로도 한결같이 계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여성문제 등 모든 사회현상이 권력 매커니즘과 관계가 있다고 보고 때로는 대중예술적 방법으로, 때로는 순수미술적 방법으로 이를 표현하겠다고 밝힌다.

'정보가 곧 권력인 시대가 됐습니다. 관건은 누가 권력인 정보를 쥐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관심을 기울여온 `사이보그'와 `몬스터' 시리즈에 이어 `사이몬스터' 등으로 작업영역을 확대해 이런 양태를 보여주고자 합니다.'

이씨는 지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 사이보그 >< 몬스터 > 등 작품 7점으로 권력의 정체를 탐색했다. 이제 그는 이들 두 개념을 합한 사이몬스터로 이분법적 논리를 깨고자 한다. 하이 테크놀로지와 결합한 유기체가 사이보그라면 몬스터는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유기체를 뜻한다. 둘은 본래 같은 어원을 갖고 있었으나 근대와 현대로 넘어오면서 대립적 개념으로 멀어졌다는 게 그의 견해다.

홍익대 조소과를 나온 그는 줄곧 국내에서 작업해왔지만 특정흐름에 자신을 편입시키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틀을 거부하고 `오불관언'의 자세로 자신만의 길을 오롯이 걸어왔다. 작품에 후각적 요소를 과감히 도입한 것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그에 따르면 시각은 그동안 미술에서 특권적 우위를 구가해왔다. 반면 후각 등 나머지 감각은 무시됐다. 88년 첫 개인전에서 죽은 생선을 비닐봉지에 넣어 늘어놓은 설치작업 < 화엄 >으로 주목받았던 이씨는 96년 미국 뉴욕현대미술관 전시 때도 생선작품을 내놓았다가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철거당한 바 있다.

'미술적 소재로 생선을 이용한 것은 시각의 특권적 지위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오감으로 작품을 풍부히 느끼자는 것이지요. 관람객은 미술관 내에서 풍겨나오는 냄새로 감상을 시작해 작품을 육안으로 마지막 확인하게 됩니다.'

이씨는 90년대 초부터 주로 외국에서 전시회를 가져왔다. 미국,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에서 해마다 4-5차례씩 작품을 선보여 국외 나들이가 모두 50여회에 달한다. 그러나 국내전시는 88년과 지난해 등 두번에 불과하다. 외국유학을 전혀 하지 않은 그로서는 외국전시가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이는 내년도 마찬가지가 될 것같다. 미국 미니애폴리스의 워커아트센터(2-4월),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5월)를 비롯해 독일, 오스트리아, 일본 등지에서 열리는 9개의 전시회에 참가한다. 보통 때보다 곱절이나 많은 해외전을 부지런히 소화해야 하는 것이다. 국내전도 2월 말 베니스 비엔날레 귀국보고전(문예진흥원)과 5월 개인전(국제갤러리) 등 3차례 계획중이다.

이씨는 21세기의 흐름과 관련해 `살아 남는 게 나아가는 시대'라고 함축적으로 요약했다. 대중이 선택하는 게 반드시 옳다고 할 수 없고, 옳은 것이 반드시 살아 남는 건 아니라고 전제한 뒤 개방과 공유의 시대에 민족주의 등의 작은 틀에 억지로 끼워맞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고추가 원래 나라 밖에서 들어왔지만 지금은 김치에 넣는 양념으로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듯이 예술도 외부적 요소를 흡수해 익숙해지다보면 내것이 되어 스스로 풍부해진다는 얘기다.

이씨는 현재의 미술계 현실과 관련해 작품유통시장, 전시방식, 국가지원 등에서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면서 미술관이 40여개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나마 미술관이 일정지위를 갖고 있는 작가위주로 전시해 전반적 흐름을 알기 어렵고, 상업화랑 역시 판매와 대관에 치우져 젊고 유능한 작가가 끼어들 여지가 적다는 것.

최근 생겨난 대안공간은 참신한 작가를 지원.육성한다는 점에서 좋은 현상이라고 반겼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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