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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반한 한국 (23) 남해 힐튼 리조트 총지배인의 남해 사찰 탐방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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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사원’ 금왕사

아시아에 거주한 지 12년째다. 12년의 대부분을 동남아시아에서 보냈고, 2010년 3월부터 한국에서 살고 있다. 나는 한국에서도 경남 남해에 산다. ‘남해힐튼 골프&스파 리조트’가 내 직장이고, 거기서 내가 맡은 역할은 총지배인이다.

 시간은 늘 급행열차처럼 빠르게 흘러가지만,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뚜렷한 사계절 때문인지 한국에서는 시간 변화가 더욱 빠르게 느껴진다. 남해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해 내 앞에 나타났다. 벚나무가 멋지게 자리잡은 길을 따라 ‘하얀 벚꽃 샤워’를 만끽할 수 있는 4월, 수많은 휴가철 고객과 함께 정신 없이 보내는 여름, 울긋불긋한 단풍을 멋지게 펼쳐내는 가을까지 남해는 1년 내내 정말 멋졌다.

남해 힐튼리조트 스테파노 루차 총지배인은 여유가 있을 때마다 남해 용문사를 찾는다.

 한국에 오자마자 나는 탐험가라도 된 듯이 남해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까운 곳부터 다녔다. 지도를 보니 내가 일하는 리조트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용문사가 있었다. 작은 절이지만 인상 깊었다. 작은 강이 흐르고 있었고, 스님이 가꾸는 작은 정원과 부처님을 모신 건물, 동종과 같은 한국 불교문화의 상징이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었다.

 다음엔 더 멀리 가보기로 했다. 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나갔다가 금왕사 표지판을 발견했다. 금왕사는 보리암 가는 길에 있지만 이 작은 사찰을 들르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날 이후 이곳을 ‘비밀의 사원’이라고 부른다. 금왕사의 봄은 각양각색의 꽃으로 화려하다. 아주 낭만적인 모습이다. 바람 방향과 시간이 맞으면 근처 보리암에서 울려퍼지는 나지막한 북 소리와 염불 소리도 들을 수 있다.

 금왕사로 이어지는 작은 길은 의외로 경사가 가팔랐다. 내 차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도전과 맞닥뜨렸다. 그러나 보람이 있었다. 금왕사엔 특별한 것이 있다. 금왕사 언덕 위에 있는 석불이다. 12좌가 넘는 작은 석불이 다양한 자세로 종종 찾아오는 방문객을 맞는다. 스님들이 기도할 때 쓰인다는 작은 동굴에서는 기(氣) 같은 것도 느껴졌다.

스테파노 루차 총지배인이 이달 중순 손수 찍은 남해 벚꽃길. 아직 꽃봉오리가 터지지 않았어도 봄은 느껴진다.

금산 보리암, 계절마다 다른 색채

그리고 남해금산 보리암. 내가 가본 남해의 사찰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약간의 육체노동을 거쳐야 보리암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남해 금산 중간에 차를 세우고 900m쯤 산을 올라야 한다. 가는 길은 쉬운 편이지만,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다. 봄·가을은 보리암을 찾아가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꽃과 나무가 연출하는 색깔도 다채롭다.

 남해 금산 정상에 오르면 절벽이 만들어내는 멋진 광경에 놀랄 것이다. 암자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형상의 암봉은 언제나 상상력을 자극한다. 보리암은 단순히 카메라 셔터만 눌러도 좋은 작품이 나온다. 더욱이 보리암은 계절마다 다른 색채로 물들어 언제 찾아가도 다른 느낌의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종교를 떠나 암자를 방문하고 불상을 바라보는 것은 나에게 언제나 환상적인 일이다. 왠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평온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아시아 여러 지역을 돌며 생활하는 동안 나는 각종 불상과 그림을 수집해 왔다. 이제껏 모은 불상과 그림으로 내 거실은 신비로운 사원처럼 될 날이 멀지 않았다.

 내 친구나 가족이 남해에 오면 남해에 있는 이 세 사찰을 방문하는 것이 이제는 전통이 되었다. 나름대로 투어 이름도 정해놨다. ‘남해의 영적인 여정’. 자신하는데, 어느 여행보다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여정이다.

스테파노 루차(Stefano A. Ruzza)
1973년 스위스 출생. 스위스의 루체른 호텔 경영학교를 졸업했다. 1997년부터 인도·스리랑카·필리핀·태국·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여러 지역 리조트에서 근무했다. 지난해 3월 힐튼 남해 골프&스파 리조트 총지배인으로 임명돼 처음 한국에 왔다. 사진촬영이 취미로 사진 블로그(www.worldisround.com/home/steffmy)도 운영하고 있다.


정리=손민호 기자
중앙일보·한국방문의해위원회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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