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북한, 리비아 사태 두고 궤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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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리비아에 대한 연합군의 비행금지조치 실행을 두고 북한이 공식 입장을 밝혔다. 외무성 대변인 기자회견 형식을 빌려 밝힌 내용은 리비아 사태에 대한 북한 당국의 왜곡된 인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대변인은 리비아 내전의 원인을 미국이 부추긴 것으로 규정했다. 미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권능을 도용해 ‘기만적 결의’를 조작해낸 뒤 결의의 한계선마저 넘어 무차별적인 무력간섭에 나섰다는 것이다. 대변인은 미국의 리비아 공격이 주권국가의 자주권과 영토에 대한 침해이며, 그 나라 인민의 존엄과 생존권을 짓밟는 반인륜 범죄로 단죄한다고 강조했다. 대변인은 이어 미국이 과거 주장한 ‘리비아 핵포기 방식’이 안전보장과 관계개선이라는 사탕발림으로 무장해제시킨 다음 군사적으로 덮치는 침략방식이라고 강변했다. 따라서 북한이 선군 정책 아래 구축한 (핵무장 등) 국방력이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기막힌 발상이다. 북한이 매사를 찌그러진 안경을 쓰고 바라보며 자신들의 억지 주장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하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보는 것과 전혀 다른, 억지 논리로 세상을 재단하며 궤변을 내세우는 데는 다시 한번 혀를 찰 수밖에 없다. 리비아에 대한 연합군의 공습은 카다피 정부군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대량 학살할 것이 분명해지자 실행된 것이다. 정부군이 전투기를 동원해 민간인들을 겨냥한 폭격을 감행하면서 피해가 커지자 시급하게 결정된 것이다. 특히 유엔 결의는 외국군의 리비아 영토 점령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북한 외무성 대변인 주장은 다음과 같은 뜻으로 들린다.

 북한 지도부는 (주민의 인권을 철저히 억압하는) ‘우리식 사회주의’ 체제를 결코 포기할 수 없다. 그 체제를 지키기 위해 핵무장도 절대 포기할 수 없다. 만약 북한에서 리비아처럼 민주화 시위가 벌어진다면 카다피보다 더 잔혹한 방법으로 진압할 것이다. 이를 빌미로 국제사회가 개입한다면 핵무기 사용도 불사할 것이다. 핵전쟁이 무섭다면 북한 정부가 주민들을 대량 학살하더라도 개입하지 말라. 이게 한 나라의 공식적 입장을 대외적으로 밝히는 외무성 대변인이 할 말인가.

 핵무기가 외부 개입을 막는 수단이 될 순 있을 것이다. 핵전쟁이 불러올 미증유(未曾有)의 참사를 우려해 북한에서 어떤 참혹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국제사회가 개입을 주저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북한의 지도부가 쥐꼬리만 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북한 주민 전체의 복지와 인권과 생명의 희생은 물론 나아가 핵전쟁까지 불사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막돼먹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미국에 협상하자고 추파를 던지고 세계 각국에 식량을 구걸하고 있다.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면서 도대체 협상은 왜 하자는 건지, 막말을 마구 내뱉으면서 식량을 구걸할 염치는 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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