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수퍼컴퓨터 지원 목마른 중소기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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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박영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원장

중소기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강소기업인 스몰 자이언트를 다수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정부가 최근에는 동반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체 기업의 99%와 고용인력의 88%를 소화하는 중소기업이 탄탄하지 않다면 안정적 지속성장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정부 차원에서 꾸준히 지원방안들을 마련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뜻한 만큼 효과가 나오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현장성의 부족’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정보분석 전문가로서 30년 가까이 과학기술·산업정보를 기업맞춤형으로 분석해 신기술에 대한 타당성 분석을 하거나 미래 유망 신수종사업을 찾아주는 업무를 해왔다. 그래서 중소기업 니즈(needs)에 대해 적잖이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2008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원장으로 취임해 중소기업을 핵심고객으로 정하고 나자 묘안이 많지 않았다. 중소기업을 성공적으로 지원하려면 현장 니즈를 더 치열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었다.

 결국 KISTI 실무자들과 함께 지난 한 해 동안 서울에서 제주까지 100개의 기업을 직접 찾아갔다. 고객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기관 사업에 적용시키기 위해 5000㎞ 이상을 발로 뛴 것이다. 그리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물었다.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무엇을 어떤 방법으로 지원해야 제대로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저절로 답이 나왔다. 그랬다. 답은 현장에 있었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필자나 연구원들 모두 상당한 체력적 한계를 느껴야 했지만, 기업현장 방문을 통해 얻은 것들은 그런 고통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았다. 단순한 설문조사로는 헤아릴 수 없는 핵심적인 니즈를 파악할 수 있었고, 특히 절반 가까운 중소기업들이 수퍼컴퓨팅 지원을 강력하게 원하는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수퍼컴퓨터를 먼 나라의 얘기로만 여겼던 기업들은 수퍼컴퓨터의 용도와 활용방법을 알려주자 앞다퉈 사용하고 싶다며 손을 내밀었다. 또 단순한 자금지원이나 정보지원보다는 ‘우리 기업의 현재 역량에 비춰 앞으로 신사업을 시작한다면 어떤 분야가 좋을까, 우리 기술이 정말 시장성이 있을까,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 사업화해야 할까, 사업 로드맵은 어떻게 짜야 할까’ 등 맞춤형 분석정보를 강력하게 원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후속조치도 빠르게 추진됐다. 우선 100개 기업에 연구원 한 명씩을 전담 배치해 맞춤형 정보지원을 하는 사업을 새롭게 시작했고, 그동안 기초연구 중심으로 추진됐던 수퍼컴퓨팅 지원에 기업 지원을 강화시켰다. 후속조치가 취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중소기업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이 계속되고 있다. 중국 전한시대, 강족(羌族)이 반란을 일으키자 명장 조충국은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말을 남기고 현지로 달려간다. 그러고는 지세, 적의 동태, 포로들의 증언을 샅샅이 확인한 뒤 뛰어난 전술을 발휘했고, 반란은 빠르게 잦아들어갔다. 고사성어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에 얽힌 이야기다. 조충국이 뜻한 바를 이루었듯 필자와 KISTI 역시 ‘중소기업 발전을 통한 국가경제 성장’이라는 목적을 꼭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박영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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