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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 전문기자의 경제 산책] 가계빚, 시장 친화적 대책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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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김정수
전문기자

가계부채 대책, 시장친화적일 수는 없을까? 가계부채를 둘러싼 최근 논란을 보면서 갖게 되는 의문이다.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가운데 금리 인상으로 가계 이자부담이 늘어나 걱정이다. 가계부채가 부실해질 수 있고, 그것이 금융부실로, 또 나라 전체의 문제로 번질까 싶어서다.

 다른 나라와 견줘 보면 가계부채가 갑자기 부실해 질 것 같지는 않다. 집값에 대한 부채비율(LTV)은 선진국의 절반 수준이고, 금융부채에 대한 금융자산의 비율이 올랐다. 경기가 호전돼 상환능력이 강해지고 있고, 집값 급등으로 부동산 버블을 우려할 상황도 아니다. 이럴 때 가계부채가 더 큰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갑자기 금리를 많이 올려 경기를 급랭시켰거나 규제로 너무 죄어 집값을 폭락시킨 결과이기 십상이다.

 숫자로는 그러한데 점점 선제 대응하라는 전문가들의 조언에 수긍이 간다. 문제가 심각해져서가 아니다. 과거 경험으로 미뤄 볼 때 미리 손쓰지 않으면 심각한 정책 왜곡이 일어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가만 두면 앞으로 경기가 좋아져 부동산 시장도 잘 돌아가게 될 것이다. 집값도 오르고 가계대출도 늘어날 것이다. 그 종착역은 언제나 충격적인 대책이다. 특히 안 그래도 물가 때문에 금리 인상이 이어질 텐데 가계부채를 억제한다고 더 금리를 올릴 것이다. 그러고는 서민 부담을 덜어준다며 금융지원·부채경감 등 선거철에 등장하게 마련인 온갖 대책을 내놓을 것이다. 그래서 가계부채 급등 억제책을 지금부터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어쩌자는 얘긴가?

 가계부채의 문제는 큰 덩치와 취약한 구조 크게 두 가지다. 가계부채 규모가 큰 것도 문제지만 그 대부분이 변동금리부 단기대출이고 원금은 갚지 않고 이자만 내는 것이어서 금리가 오르면 갑자기 부담이 늘어나는 취약한 구조가 더 큰 문제다.

 이들 문제에 대한 정답은 이미 나온 지 오래다. 대출 수요를 줄이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거나 대출 공급을 억제하기 위해 예금 대비 대출 비율이나 총부채상환율(DTI)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가급적 덜 꾸고 덜 꿔주라는 얘기다. 또 가급적이면 고정금리부 장기대출로 원금과 이자를 일찍부터 같이 갚는 식으로 대출을 바꿔야 한다는 권고도 나와 있다.

 이들 규제나 감독은 이미 실시되거나 권해져 왔다. DTI 규제만 하더라도 강하게든, 약하게든 수년째 해왔다. 그런데도 그 규제가 정해 놓은 상한까지 가계대출이 꼬박 차는 통에 가계부채가 계속 늘어 왔다. 구조개선책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모두에게 좋다고 얘기해도 대출이 장기화하거나 고정금리부 대출이 늘어나거나 원금을 갚지 않는 기간이 줄어들 기색이 아니다. 그래서 걱정이다. 정부가 과격하게 대응할까 해서다.

 지금 여론이나 상황으로는 (금리인상만 빼고)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관련해 몇 가지 당부가 있다. 첫째,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되 가급적이면 시장의 반응을 감안해 결과를 물 흐르듯 유도하는 식이면 좋겠다. 일도양단 우격다짐으로 시장에 규제와 감독만을 들이대지 말았으면 한다. 그래야 시장의 자유로운 작동을 덜 손상시킬까 해서다.

 둘째, 규모 억제책과 구조 개선책을 연계시켰으면 한다. 규제와 감독의 ‘전체 강도’는 가계부채 문제해결에 적합하도록 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틀 안에서 구조개선에 참여하는 금융회사와 가계대출자에게 ‘상대적 규제완화’로 인센티브를 주면 어떨까 싶다. 구조개선에 게으른 금융회사는 영업 관련 규제를 더 엄격히 적용하는 대신 구조개선에 적극적인 금융회사는 규제를 덜 엄격하게 적용하자는 거다. 시장의 유인체계를 활용해 시장을 통해 가계부채 급등 억제와 취약구조 개선의 두 마리 토끼를 잡자는 얘기다.

 셋째, 가계부채 급등 억제라는 큰 줄기를 놓치지 말 것을 권한다. 자주 그래왔듯이 부동산 활성화니 서민 금융지원 같은 잔가지 보완대책에 너무 집착하지 말기 바란다. 가계부채 대책이 누더기가 되어 실효성이 낮아지고, 그러면 더 강도 높은 대책을 동원하게 돼 민간의 적응 부담만 늘어날까 싶어서다. 명확한 정책 목표를 시장친화적으로 펼치는 가계부채 대책을 기대해 본다.

김정수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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