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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에 작전권 넘긴 오바마 … ‘존웨인아메리카’ 포기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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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 공수부대 낙하훈련 미국 공수부대원들이 2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아비아노의 나토 공군기지 인근 마니아고시 상공에서 공군 수송기 C-17에서 뛰어 내리는 낙하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군은 이날 밤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등에 4차 공습을 감행했다. [마니아고 AFP=연합뉴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니콜라 사르코지(Nicola Sarkozy) 프랑스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 영국 총리와 차례로 전화 통화를 했다. 오바마는 통화에서 프랑스·영국의 두 정상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앞으로 리비아에 대한 군사작전 지휘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고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이 밝혔다. 이는 미국이 리비아 사태와 관련해 한 발 뒤로 물러섰음을 의미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마우리시오 푸네스 엘살바도르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의 수도대성당을 둘러보고있다. [산살바도르 AFP=연합뉴스]

 허핑턴포스트 등 미 언론은 또 오바마 행정부가 대리비아 군사작전에 소요되는 비용을 의회에 별도로 요청할 계획이 없다고 보도했다. 연합군의 첫 공격이 이뤄진 19일 미군은 지중해에 배치된 함정에서 토마호크 미사일 100여 발을 발사했다. 이 비용은 1억1200만∼1억6800만 달러(약 1260억~1890억원)로 추산된다. 미 국방부가 재량 범위 안에서 지출할 수 있는 전쟁비용은 10억 달러가량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미 의회에 추가 예산을 요청하지 않기로 했다는 사실은 리비아에 대한 군사작전이 제한된 범위 내에서 단기간에 종결될 것이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설사 오바마 행정부가 추가 예산을 요청한다 해도 엄청난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공화당 지배의 미 하원이 이를 받아줄 거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이는 미국이 지금 ‘세계의 보안관’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국제적 현안의 어젠다 제시와 해결은 늘 미국이 주도해 왔다. 미국은 미·소 냉전시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1990년대 이후 유일의 수퍼파워로 자리 잡으면서 그런 역할을 자임해 왔다. 빌 클린턴(Bill Clinton·1993~2001년 재임) 대통령은 스스로 ‘세계의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했다. 조지 W 부시(George W. Bush·2001~2009년 재임) 대통령은 2001년 9·11 사태 이후 국제 질서를 지배하는 ‘결정자(the decider)’로 불렸다. ‘존 웨인 식 정의의 보안관’ 역을 자임한 것이다, 그런 상황이 21세기 둘째 10년을 맞은 지금 변하고 있다. 리비아 사태가 첫 단초다.

 미국이 스스로 세계적 현안의 지배적 플레이어 자리를 내놓고 지원 역할에 머무르고 있는 데 대해 데이비드 로스코프(David Rothkopf)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오바마 대통령이 국내외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현안들에 둘러 싸여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8년 미국을 덮친 금융위기 이후 출범한 오바마의 책상에는 매일 일자리 창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미국·멕시코 간 국경 분쟁, 이란과 북한의 핵개발 등 해결이 쉽지 않은 현안들이 올라와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워싱턴의 고위 외교소식통은 “2개의 전쟁(아프가니스탄·이라크)을 수행하면서 감당해야 하는 돈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며 “특히 리비아의 경우 이슬람 국가와 세 번째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욱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중앙무대에서의 퇴장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의 기질과 민주당 정부의 지향점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오바마는 2009년 6월 카이로 연설을 통해 이슬람과의 화해를 주장했다. 그가 노벨평화상을 받게 된 ‘업적’ 중 하나다. 이 때문에 누구보다 오바마 대통령 본인이 이슬람과의 대립을 우려하고 있으며, 그것이 미국의 리비아 정책에 반영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 오바마 행정부가 국제사회에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에서 벗어나 다자주의를 중시하는 ‘스마트 파워’ 외교를 펼치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분석이 많다. 미국이 국제사회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동시에 이제는 세계의 모든 짐을 혼자 짊어지지 않겠다는 입장을 명백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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