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자상거래법, 세계 표준 모델로 떠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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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중순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무역법위원회 전문가회의에서 모바일 금융 법률에 관해 발표하는 정창호 부장판사.

“우리나라 전자상거래법이 세계 표준 모델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모바일 금융 등 전자 상거래가 한국처럼 활발한 나라가 없다보니 법도 앞서 있거든요.”

 정창호(44·사법연수원 22기) 광주지법 부장판사는 20일 기자에게 “우리나라는 기술 강국이기 때문에 법률 강국도 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대법원 국제상거래팀장을 겸직하며 4년째 국제법 분야의 ‘한류(韓流)’를 이끌고 있다. 우리나라 법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표준법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 부장판사는 지난달 중순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국제무역법위원회(UNCITRAL) 전문가 회의에 초청받아 모바일 금융법에 대해 발표했다.

 “이동통신 업체나 모바일 소액결제 업체에게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인지 화두를 던졌지요. 다른 나라 대표들이 고민하고 있을 때 ‘우리나라는 이미 전자금융거래법을 통해 금융기관과 유사한 책임을 묻고 있다’고 하자 깜짝 놀라더군요. 자신들은 아직 생각도 못했던 문제에 대해 우리는 이미 법제화까지 마쳤다니 말입니다.”

 발표가 끝나자 각국 대표들이 그에게 다가왔다.

 “미국·캐나다 교수들이 제게 ‘모바일 금융법에 관한 논문을 써달라’며 서로 실랑이를 벌이고 동남아시아 공무원과 변호사들은 법제를 전수해 달라고 앞다퉈 요청했습니다.”

 UNCITRAL은 상거래와 관련해 일종의 ‘세계 표준법’을 만드는 곳이다. 60개 회원국은 이 표준법을 각기 자국의 법률에 반영한다. 회원국들은 사실상 통일된 법 체제 속에서 무역을 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통합도산법·중재법 등도 이러한 세계표준법에 맞춰 제정하거나 개정했다. 우리나라 법에 기반을 둔 ‘세계 표준법’이 채택된다면 국내 기업들은 이미 익숙한 법 체제 속에서 세계와 경쟁할 수 있게 된다.

 정 부장판사는 2008년부터 외교통상부에 사법협력관으로 파견되면서 ‘법 한류’ 전파에 나섰다. 2년 동안 UNCITRAL 본부가 있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살면서 1년에 30주씩 우리나라 대표단으로 부지런히 회의에 참석했다.

 “제 영어는 완벽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대부분 교수로 이뤄진 대표단 속에서 법관이라는 장점을 살렸죠. 재판 경험을 살려서 회의 진행도 매끄럽게 유도하고 만들어진 법이 실제로 재판에선 어떤 형태로 적용되는지 적극적으로 설명했지요. 이제 그 결실이 조금씩 나타나는가 봅니다.” 정 부장판사는 “각국 대표들이 쓰는 휴대전화나 노트북이 대부분 우리나라 제품이었다”며 “이제는 이런 기술과 관련된 법률도 세계의 모델이 될 때”라고 말했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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