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2K 수술 손댔다가 암까지 발견·치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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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을 코앞에 둔 지금, 각 기업들은 Y2K(컴퓨터 연도인식 오류)의 완전한 해결을 놓고 골머리를 썩고 있다. 기업들은 최소의 비용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나 어느 누구도 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상태다.

하지만 여기에 눈여겨 볼 기업들이 있다. Y2K를 해결하다 보니 다른 골칫거리도 풀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는 회사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타이항공의 Y2K 책임이사 부느가 코른비나이는 “회사가 Y2K로 인한 컴퓨터의 에러를 방지하기 위해 방어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조직내의 관료주의와 잠재적 현금자산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Y2K와 더불어 이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 노력한 결과, 회사 내부의 의사소통이 활성화되고 회사의 기술적 잠재력도 향상됐다. 지난 96년부터 Y2K문제 해결에 주력해 온 타이항공은 간부들이 IT(정보화 기술)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을 새로이 한 것을 가장 큰 성과로 꼽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Y2K 문제해결 과정이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니다. 3년 전 이 문제해결을 위해 3억 바트(1천2백만 달러)의 예산을 책정한 타이항공은 기업내 정보시스템·설비장치·비행기 등의 Y2K 위험을 검사했다. 조사결과에 따라 이 기업은 구식장비들을 교체하거나 업그레이드했다. Y2K에 대한 신속하고 빠른 대처로 이 기업은 지난 98년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이나 루프트한자 등 세계적 항공사들의 연합인 ‘스타 얼라이언스’에 가입할 수 있었다.

타이항공은 기업전체의 절반이 국가 소유이기 때문에 직원들이 관료주의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직원들은 협동적으로 일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경쟁에 이겨 승진하는데만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Y2K문제 해결을 위해 각기 다른 부서의 직원들이 활발한 의사소통을 벌이는 것이 꼭 필요하게 됐고 이는 조직 전체의 효율성을 향상시켰다. 몰랐던 암(癌)을 발견해 치료까지 한 셈이다.

조직내 의사소통을 활성화하니 고객에 대한 서비스가 개선됐다. 이제까지는 기기상의 문제가 종종 비행기 출발을 지연시키곤 했다. 하지만 이제 격납고 직원들이 문제발생을 승무원에게 알리면 이를 승객들에게 재빨리 인지시키고 다른 직원들과 협력해 문제를 신속히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Y2K 문제를 해결한 뒤 타이항공은 부서간 교류를 정례화시켜 협력적 기업 문화를 이어갈 방침이다.

은행도 Y2K를 퇴치하기 위해 가장 노력해야 할 업종 중 하나다. 많은 전문가들은 한국 국민은행의 Y2K대처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국민은행 경영진들은 지난 91년 온라인 뱅킹 개설을 위한 준비단계에서 Y2K의 심각성을 인식했다. 따라서 연도인식을 위해 컴퓨터가 4자리 숫자를 인식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를 해야 했다. 시스템을 모두 바꾼뒤 은행은 업그레이드된 시스템이 Y2K를 완벽히 방지할 수 있다고 자신하게 됐다.

지난 98년 2월 국민은행은 Y2K대비 특별팀을 만들었다. 같은 해 7월 정부로부터 Y2K 인증서를 받았다. 인증서를 통해 이 은행은 가장 중요한 시스템인 예금 흐름을 관리하는 기능이 2000년이 돼도 아무 이상 없음을 확인받았다. 국민은행의 경영진들은 Y2K 대처를 다른 은행보다 일찍 시작한 것이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 4월 골드만 삭스가 이 은행 지분의 16.8%를 5억 달러에 매입했고 이는 이 은행의 Y2K 방지 시스템 구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민은행이 한국 은행 중 최고의 IT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 결과 비용 대비 효율이 증가했고 부채상환분을 제외한 전체 수익금이 증가했다. 올해 9월까지 국민은행의 순수익은 5천7백5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1백57억원 손실을 본데 비해 엄청난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외국 자본의 유치는 한국이 경제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도 이 은행의 재무제표 건전성을 높이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 은행 관계자는 Y2K 프로그램이 현재 다른 외국자본의 투자도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간부들 사이에 IT사업의 중요성을 인식시킬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아직 많은 기업들에서 Y2K 대처의 긍정적 측면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Y2K 대처는 많은 비용이 들고 남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며 “하지만 특히 아시아 기업들은 IT 사업과 관련된 Y2K 대응을 제때 마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리= 중앙일보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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