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주민 송환’ 선박고장으로 발 묶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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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남북 간 합의에 따라 17일 서해상에서 북측에 인계될 예정이던 북한 주민 27명이 우리 관계당국의 준비 소홀로 발이 묶이는 사태가 벌어졌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주민 27명과 이들이 타고 온 선박을 북한과 약속한 연평도 인근 서해 북방한계선(NLL) 쪽으로 출발시키려 했으나 17일 아침 북한 선박의 엔진이 고장 나 어렵다는 관계당국의 통보를 받았다”며 “이런 사정을 판문점 적십자 채널을 통해 북한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문제의 선박은 지난달 5일 황해남도 해주 등에 사는 주민 31명(남성 11명, 여성 20명)이 남쪽으로 넘어올 때 타고 온 5t짜리 목선이다. 당국자는 “표류해 왔을 때부터 엔진이 고장 나 다시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며 “해상 인계를 위해 유사한 엔진으로 교체·수리를 마친 상태였으나 출발 직전 고장을 일으켰다고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정부와 대한적십자사는 당초 판문점을 통한 주민 송환을 추진했으나 북측이 해상으로 선박과 함께 돌려달라고 요구하자 이를 수용했다.

 남북 합의사항 이행이 우리 측 준비 부실로 차질을 빚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31명 중 주민 4명의 귀순 발표와 합동신문·북송 준비를 주도한 국가정보원의 일 처리가 허술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그동안 귀순자까지 송환하라는 북측 선전 공세에 대응하지 못했고, 이날은 준비 소홀로 27명의 송환까지 차질을 빚었다. 남북 간 불필요한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갑작스러운 선박 고장을 이유로 주민 송환이 차질을 빚자 ‘추가 귀순자 발생 등 말 못할 문제가 생긴 때문’이란 관측도 한때 제기됐다.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선박 수리와 서해 기상상황 등을 고려해 북측과 주민 송환 일정을 다시 협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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