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표류 북 주민 송환 미숙했던 대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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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달 5일 서해 백령도 앞바다를 표류해 넘어온 북한 주민 31명 가운데 27명이 우여곡절 끝에 북한에 곧 송환된다. 4명은 한국에 귀순했다. 대한적십자사는 지난 3일 27명 송환 방침을 통보했지만 북한은 전원 송환을 요구하며 2주가량 버티다가 최근 일부 송환을 받아들였다. 표류한 북한 주민 가운데 일부가 잔류한 일은 전례가 없지 않으나 매우 이례적이다. 이를 두고 북한은 한동안 “추악한 귀순 공작” 운운하며 대남 비난에 열을 올렸다. 이번 일로 남북 관계에 새로운 긴장 요인이 발생할 가능성이 생겼다.

 이번 북한 주민 송환 과정에서 당국의 대처는 일부 미숙한 점을 드러냈다. 설 연휴 기간에, 남북 군사실무회담을 코앞에 두고 대규모 표류가 발생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이들에 대한 대공 용의점 조사가 길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합동참모본부는 지난달 7일 표류 사실을 밝히면서 “이틀간 조사한 결과 아무도 귀순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귀순 의사를 밝힌 사람이 없다는 당국 입장은 지난달 말까지 유지됐다. 그러다가 지난 3일 4명이 귀순 의사를 밝혔다는 점을 처음 공개했다. 이와 관련, 당국은 4명이 송환에 임박해 귀순 의사를 밝힌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귀순하겠다는 북한 주민을 강제로 송환하는 것은 절대 있어선 안 될 일이다. 그러나 당초 귀순 의사를 밝힌 사람이 없었다는 당국 입장이 갑작스럽게 바뀜으로써 북한에 비난할 빌미를 준 것은 당국의 실수다. 2008년 2월 고무보트를 타고 서해로 표류한 22명의 북한 주민을 하루 만에 돌려 보낸 일에 대한 비판 여론이 있었던 점과 대공 용의점 조사가 길어질 것임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던 상황임을 감안하면 귀순 의사 여부를 처음부터 공개하는 일은 피했어야 했다.

 2000년대 들어 북한은 동해상에서 나포한 우리 어부 전원을 송환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럴지 불투명해졌다. 물론 보복하듯이 북한이 우리 주민을 부당하게 억류하는 일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더라도 우리 어민들은 더욱 조심할 필요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