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서울시의회의 횡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민주당 시의원들이 다수(多數)를 차지한 서울시의회의 횡포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민주당 소속 시의원 24명이 최근 시의회가 예산을 심의·의결해 사업의 시행 시기와 지원 범위, 지원 방법 등을 확정한 사항은 주민투표에 부칠 수 없도록 하는 ‘주민투표조례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렇게 되면 시의회를 통과한 사업이 주민의 뜻에 어긋나거나 상위법에 위반되더라도 바로잡을 기회가 없어 그대로 시행될 수밖에 없다. 서울 시정(市政)을 시의회가 힘으로 좌지우지하겠다는 위험하고도 오만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민주당의 조례 개정 추진에는 현재 진행 중인 전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 서명운동을 저지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시의회는 지난해 12월 무상급식비 695억원을 신설하는 무상급식 조례를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지방의회는 단체장의 동의 없이 지출예산 금액을 늘리거나 새로운 비용 항목을 신설할 수 없다는 지방자치법을 어겨가면서 힘으로 밀어붙인 것이다. 이를 서울시와 시민단체가 주민투표로 바로잡으려 하자 조례를 고쳐 막겠다고 나선 것이다. 전형적인 소급 입법 형태라는 점에서 타당성(妥當性)이 없다고 본다.

 조례를 통해 주민투표를 제한하려는 시도는 법령 체계에 어긋난다는 점에서도 문제다. 현행 주민투표는 지방자치법과 주민투표법이라는 법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주민투표법에는 주민투표 제외 대상이 규정돼 있다. 그런데도 하위법인 조례에 더 포괄적으로 제외 대상을 규정하는 것은 입법권 남용이라는 게 법률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상위법에 위배돼 실효성이 의심되는 조례를 추진하는 건 무지(無知)이거나 오만일 뿐이다.

 민주당은 법률이 보장하는 주민투표권을 제한하는 조례 개정안을 당장 철회해야 마땅하다. 서울시민이 민주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어준 건 대화와 타협을 외면한 채 일방통행식 독주(獨走)를 하라는 뜻이 아니다. 시민은 안중에도 없이 모든 걸 힘으로 해결하겠다는 행태를 고집하다간 다음 선거에서 역풍(逆風)을 피할 수 없다. 서울시의회가 성숙한 풀뿌리 정치를 보여줄지, 아니면 시정의 발목을 잡는 애물단지로 전락할지는 민주당 하기에 달렸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