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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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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국민성(國民性)을 비교할 때 흔히 등장하는 나라가 프랑스·영국·독일이다. 프랑스 역사가 쥘 미슐레(Jules Michelet·1798~1874)는 “프랑스는 개인이고, 영국은 제국이며, 독일은 민족이다”라고 압축했다. ‘프랑스인은 달린 후에 생각하고, 독일인은 생각한 후에 달리고, 영국인은 걸으면서 생각한다’는 일화도 있다. 프랑스인은 대혁명 같은 역사적 사건을 일단 저질러 놓은 뒤 사태를 추스른다. 독일인은 패망으로 끝난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보듯 목표를 세우면 돌진한다. 영국인은 경험을 쌓고 신중히 전개하는 타입이라고 한다.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다. 유엔에서 나라별로 대표가 나와 자국의 국민성을 이해시키는 자리를 마련했다. 프랑스는 ‘예술’, 영국은 ‘신사’, 독일은 ‘근면’이라며 장황하게 설명했다. 듣고 있던 한국인이 도중에 튀어나왔다. “거 좀 빨리빨리 하고 들어갑시다”라고 했단다. 성마른 한국인의 특성을 재치있게 그려낸 묘사다.

 국가라는 공동체 아래 살다 보면 같은 가치관, 행동양식, 기질 등이 쌓여 국민성이 형성된다. 나라마다 각양각색 문화가 있어 우열을 가릴 순 없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Arnold Toynbee·1889~1975)는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에서 “사회의 쇠퇴나 문명의 몰락은 외부가 아닌 내부적 요인에 기인한다”고 갈파했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 업적을 남긴 민족의 특성을 ‘진실한 국민성’과 ‘굳건한 단결력’에서 찾았다. 국민성이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꾸는 것이다. 한 나라의 역사는 국민성이 응축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대참사 앞에서 보인 일본의 ‘메이와쿠(迷惑) 가케루나 문화’에 세계가 놀랐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마라’는 배려의 국민성은 비극 속에서도 질서와 절제의 미(美)로 승화했다. 내 자유와 권리를 주장할 땐 남의 자유와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 곧잘 극단으로 치닫는 우리네 모습과 영 달랐다.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는 노자(老子)의 통찰력에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자연은 인간에게 너그럽지 않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추구(芻狗), 즉 짚으로 만든 개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에게도 엄청난 천재지변이 닥칠지 모른다. ‘빨리빨리 신화’가 만들어낸 ‘다이내믹 코리아’로 그런 험난한 도전을 극복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국민성의 경쟁력이 궁금해진다.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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