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시는 가라, 극서정시 들고 나온 60대 시인 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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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나란히 시집을 낸 최동호·이하석·조정권 시인(왼쪽부터).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누군가는 말해야 하는데 아무도 말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나서게 됐다.”

 예순 줄에 접어든 중진 시인 세 명이 뭉쳤다. 요즘 젊은 시인들의 작품이 너무 어려워 독자들이 시에서 멀어지고 있다며 ‘읽기 쉬운’ 시집을 나란히 냈다. 조정권(62)·이하석(63)·최동호(63)씨가 그들이다. 각각 시선집『먹으로 흰 꽃을 그리다』 『상응』『얼음 얼굴』(서정시학)을 ‘서정시학 서정시’라는 이름을 달고 냈다. 지향점을 짧고 알기 쉬운 ‘극(極)서정시’라고 규정했다. ‘서정시’ 앞에 ‘극’이라는 문패를 붙인 것은 언어를 최대한 줄이고 압축하되 행간의 의미가 넓고 깊이 있는 시를 써보겠다는 뜻이다.

 2000년대 중반 출현해 ‘미래파’의 기치 아래 결집한 젊은 시인들의 난해시(難解詩)에 대한 저항감은 시단에서 그리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동료 시인은 물론 광범위한 시 독자를 상대로 짧은 시 쓰기 운동을 벌이는 ‘작은詩앗·채송화’ 동인들도 난해시에 대한 거부감에서 출발했다.

▶<본지 1월 14일자 22면 보도>

 세 명이 발의한 극서정시 운동은 문학전문 출판사를 거점으로 하고 있어 보다 집중력이 느껴진다. 출발부터 젊은 세대와의 대립각을 명확히 했다는 점도 특이하다.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최동호 시인은 “4월 말이나 5월 초 김종길·오세영·유안진씨의 시집 세 권을 나란히 낼 계획”이라고 했다. 중량감 있는 시인들을 자신들의 운동에 계속해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조정권씨는 “반드시 세대간 대립으로 보지는 말아달라. 요즘 시의 언어가 너무 과소비로 치닫고 있어 언어의 경제를 발휘하는 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극서정시의 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최동호씨의 ‘얼음 얼굴’ 전문이다.

 “거품 향기, 찬 면도날/출근길 얼굴/저미고 가는 바람//실핏줄 얼어, 푸른 턱/이파리 다 떨군/나뭇가지//낙하지점, 찾지 못해/투명한/허공 깊이 박혀//눈 거품 얇게/쓴/홍시 얼굴 하나”.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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